▲ 프랑스 니스의 샤갈미술관에 소장된 '십계명 받는 모세'.
세잔의 숨결이 남아 있는 엑상프로방스에서 자고, 역시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엑스의 시청광장이 새벽시장 장터다. 노점 매대가 가득하다. 야채가게에서 호박꽃을 팔고 있었다. 그때가 바로 그 처음의 설마? 였다. 아무튼. 여행 계속. 기차를 타고 니스로 향했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완행 기차 안에서 누군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단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튼.
 
니스. 니스-빌레 기차역 뒤편 언덕을 따라 올라간 조용한 주택가에 밖에서 보면 마치 그냥 가정집인 듯 소박한 샤갈미술관이 있다. 샤갈미술관이 생긴 유래는 이렇다. 방스에 정착한 샤갈은 폐쇄된 아름다운 성당을 발견하고 그 성당의 낡은 벽에 어울릴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고른 12개의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그리기로 한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아가서를 모티브로 한 5점의 작품도 함께 준비한다. 그런데 관할 교구의 주교가 거절했다. 아가서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너무 에로틱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낙담한 그에게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그 작품들을 살려서 미술관을 짓자고 나섰다. 국가에 기증하면 사후 상속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늘의 샤갈미술관이다. 1973년 개관을 했으며 정식 명칭은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 프랑스로선 생존 작가를 위한 첫 국립미술관이었다.

▲ 나무 위에 길게 누운 나신의 여인 '아가2'.
앙드레 말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조건>으로 프랑스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일 뿐 아니라, 파시즘에 레지스탕스로 대항한 행동파 지식인이기도 하다. 1959년부터 10년간 문화부장관직을 수행하며 "국가는 예술을 감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원칙을 세우고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화가가 죽은 후에는 상속세를 작품으로 내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만들어 특히 피카소 사후 소장 작품들 대부분이 프랑스 땅에 남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한다.
 
라벤다 꽃이 져 보랏빛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미술관 마당을 지나 내부로 들어섰을 때 만난 것은 구약성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대형의 유화 작품만이 아니었다.
 
햇살. 지중해의 밝은 햇살이 눈에 가득 부시게 들어왔다. 채광이 얼마나 좋은지 미술관 이곳저곳에 화분들까지 놓여 있다. 미술관에 화분이라니.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벽면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림을 벽에 걸어야 하니까. 그래서 대개 창문이 없거나 적다. 게다가 그림의 안료들이 빛에 약하다. 자연광을 피하는 구조로 되어있는 게 당연하다. 본 것 중 암스테르담에 있는 고흐미술관의 일부 전시관이 가장 극단적이다. 경제적 이유로 질 낮은 물감을 사용한 탓일까. 과장을 좀 보태면 컴컴하기가 극장 수준이었다.

▲ 샤갈미술관 내부의 '인간의 창조' 앞에서 감상하는 관람객.
하지만 샤갈미술관은 샤갈의 그림에 맞추고 샤갈의 의도에 따라 건축된 미술관이다. 지중해의 햇살은 듬뿍 받아들이되 그림에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그리하여 강렬한 색채의 그림과 밝은 지중해의 햇살을 받아 환한 건물이 경쾌하게 한 몸처럼 어우러지는 미술관이 되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널찍한 방이 나온다. 세로 3m 가로 2m 크기의 '인간의 탄생'과 '십계명을 받는 모세' '노아와 무지개' 등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모티브를 딴 12점의 대형 유화가 저마다 하나씩의 벽을 차지하고 띄엄띄엄 걸려 있다.
 
▲ 샤갈이 97세의 나이로 영면한 생폴드방스의 공동묘지. 지중해가 내려다보인다.
여유. 관람객도 누구 하나 바쁜 사람이 없다. 루브르나 오르세에서처럼 한 손에 카메라 또 한 손에 미술관 가이드북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다. 천천히 움직여 다른 방으로 건너간다. 그곳은 온통 붉은색이다. 샤갈에게 사랑은 붉은색이었을까? 아가서를 모티브로 한 5점의 그림들. 아가서는 구약성서 중 솔로몬이 쓴 것으로 알려진 사랑의 노래다. 아가서의 농도 짙은 사랑 표현은 종교적으로야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은유로 해석되지만 샤갈은 그림에서 노래 그대로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무 위에 파묻히듯 길게 누운 나신의 여인(아가2), 샤갈이 말년을 살았던 생폴드방스의 풍경 위로 날아오르는 신랑과 신부(아가4) 등 아가의 방에는 사랑 온통 붉은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다.

샤갈은 미술관 기증서에 이렇게 덧붙이는 글을 썼다고 한다.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적 깨달음과 종교적인 감정과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꿈 은 가능할까? 인생과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사랑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영화제로 유명한 깐느와 니스를 포함한 프랑스 남동부 해안을 그 사람들은 프랑스 리비에라로 부른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모양이 목걸이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으로는 남색 쪽빛의 해변이라는 뜻으로 코트다쥐르로 부르기도 한다. 이름을 무엇이라 붙여 부르건 천혜의 자연 경관을 지닌 이 지역은 항상 많은 휴양객으로 넘쳐난다. 고급 별장들도 즐비하다. 니스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생폴드방스는 1966년 인근 방스에서 옮겨온 샤갈이 인생의 마지막 20년을 보낸 곳이다. 그리고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의 공동묘지는 97세로 영면한 샤갈이 말없는 이웃들과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민적이고 사람들의 활기찬 생활이 살아있는 방스와 달리 작은 성벽 마을인 생폴드방스는 갤러리들과 공예점, 그리고 명품 가게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뒤섞인 채 박제가 된 아름다운 관광지로 변모해 있다. 어쩌겠는가. 샤갈의 바람과는 달리 고가의 물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람들 또한 세상엔 적지 않은 것을.



■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1887∼1985) ─────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러시아 비쳅스크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얻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환상을 강렬한 색채와 입체적인 공간으로 융합시키며 낭만적이고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발전시킨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본명은 모이세 세갈. 커다란 꽃다발과 날아다니는 연인들, 바이올린을 켜는 광대, 기묘한 동물과 성서의 속의 인물 등 다양한 이미지와 풍부한 색으로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미술가로 꼽힌다.



▲ 프랑스 니스의 니스-빌레 기차역 뒤편 언덕 위에 자리한 샤갈미술관 전경.
■ 샤갈미술관 ─────
▶주소:4 Avenue Docteur Menard 06000, Nice
▶전화번호:00 33 (0)4 93 53 87 20
▶개관시간:5~10월 10:00~18:00, 11~4월 10:00~17:00
요금 : 7.5유로
▶가는 방법:걷거나 택시를 이용. 가장 좋은 방법은 기차역 맞은편에서 15번 버스 타고 샤갈미술관 정류장에서 하차. http://www.musee-chagall.fr/





■ 여행팁 ─────
인구 33만의 세계적 휴양도시. 샤갈미술관 외 마티스 미술관이 있다. 니스를 중심으로 근처의 깐느쉬르메르, 생폴드방스, 방스, 앙티브 등 유명 관광지가 산재해 있어 니스에 숙소를 잡고 함께 여행하면 좋다. 기차와 버스편이 있지만 편하게 움직이고 싶으면 니스까지 기차나 비행기로 도착해 현지에서 렌터카를 빌려보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 이탈리아로부터 32km. 국경 근처에 위치한 관계로 이탈리아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적 휴양지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뒤섞여 혼잡스러운 곳이다. 여행 전 충분한 준비로 불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주의하는 것이 좋다. 호텔과 식당은 휴양지답게 싼 곳에서 비싼 곳까지 다양하고 또 충분하다.







윤봉한_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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