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5만 명 정도의 프랑스 남부 소도시 알비에는 후기인상파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일므을 딴<툴루즈 로트렉>미술관이 있다. 그림은 이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유화 작품 <물랑가의 살롱에서>
알비로 가는 길이다.
파리에서 알비까지는 700km. 얼추 서울과 김해를 왕복하는 거리다. 프랑스에 도착한지 4일째. 시차는 회복되어 가는데 출발 전 밤을 새워 준비했던 계획들은 도착하자마자 엉망이 되어 버렸다. 파리 공항에서 니스로 내려가는 막차 아니 막비행기를 놓쳤다. 새롭게 재미 붙인 스도쿠에 빠져있었던 게 불찰이었다.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 게이트가 바뀌었고 뒤늦게 허둥지둥 달려가니 유리창 너머로 비행기 계단이 분리되면서 문을 닫는 중이었다. 우리를 본 항공사 직원이 '너희들이구나. 그렇게 방송을 해도 나타나지 않던 덜 떨어진 녀석들이'하는 눈빛으로 씩 웃더니 그러나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콧김을 잔뜩 넣어 한마디 내뱉었다. '농'이라고. 농담이란 말이 아니었다. 말로는 '아니'였지만 어쨌거나 뜻은 '메롱'이었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멀어져 갔고, 손가방 몇 개뿐이어서 미리 비행기에 실어 보낸 짐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번 당황하면 계속 더듬수를 놓는 법이니.
▲ 알비시내
돌이켜 생각해보면 에어프랑스 직원에게 보딩패스를  보여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조치를 받는 게 최선이었을 거다. 하지만 당황하면 엔돌핀 대신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법.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심장과 호흡을 엄청 바쁘게 만들고 대신 머리 속은 비워버린다. 그리고는 터무니없는 용기를 뻥튀기해 '까짓 렌터카 빌려서 밤새 타고 내려가지 뭐'하는 덜컥수를 놓게 한다. 자동변속기 딸린 소형차가 떨어지고 없다는 말에는 '핑계 김에 큰 차 한번 타지'하는 과감해 보이지만 대책은 없고 재빠르지만 무모하기만한 결단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현지 시간으로는 초저녁이었지만 몸의 시차인 한국의 시간으로는 잠 안잔 새벽 5시쯤에 니스 공항에 예약해 두었던 날렵한 소형차를 날리고 팔자에 없던 삼각형별이 그려진 뭐 그런 육중한 차를 끌고 황혼이 밀려오는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을 빠져 나와야했다. 그리고 꿈에 부풀었던 여행의 첫날밤을 지중해변 깐느 쉬르메르의 편안한 호텔 방 대신 어디론가 오고가느라 분주한 차 소리가 파도소리로 들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맞이해야 했다.
 아무튼 여행은 바야흐로 말괄량이 삐삐의 뒤죽박죽 별장이 된 채 르누아르가 말년을 보낸 깐느쉬르메르를 지나 마티스의 발자취와 샤갈의 무덤이 있는 생폴드방스, 그리고 고흐의 빛나는 시절을 간직한 아를을 지나갔다. 그동안 수차례 길을 잃었고, 고속도로를 한번 거꾸로 탔고, 님에서 아를을 간다는 게 알르라는 엉뚱한 동네로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또 다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공항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했다. 아무튼 지금은 선글라스 대신 돋보기로 흐릿한 지도를 읽으며 알비로 가는 길이다.

알비다. 인구는 5만.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툴르즈 로트렉(1864~1901)이 태어났다. 13세기 십자군 원정으로, 2차 대전 때는 폭격으로 알비 시내는 초토화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타른 강 바닥의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붉은 벽돌로 알비 시내의 건물을 짓고 다리를 놓았다. 가이드북식의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알비는 붉게, 불꽃처럼 빛나고 보석처럼 아름답다.' 

▲ 아델 백작부인
로트렉의 아버지는 백작의 칭호를 가진 귀족 신분. 아델이란 이름의 사촌누이와 결혼했고 1864년 첫아들을 낳았다. 그가 우리가 알고있는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르즈 로트렉 몽파다. 그의 길고 긴 이름 만큼이나 힘들었던 그의 생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외설스럽다며 그의 그림을 그의 아버지가 불태웠던 일. 그리고 그의 불구적 신체와 그의 아버지가 백작의 칭호를 그의 누이동생에게 물려준 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재기 발랄한 뎃상들과 개성 넘치는 유화들. 그리고 일본 판화를 소화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물랑루즈등의 포스터와 많은 석판화를 기억하고 있다. 서른일곱 나이로 로트렉이 죽자 그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남겨진 방대한 양의 로트렉 유작들을 알비 시립미술관에 기증 했다. 그리고 그후 시에서 그의 이름을 따 이름을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이라 바꾸었다. 

  
미술관은 타른 강가에 있다. 첫인상은 마치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나오는 비정상적 근육을 가진 검투사. 카푸아의 챔피언 같은 모습이다. 나란히 붙은 세인트 세실성당 또한 고딕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외벽에 플라잉 버틀레스가 없다. 강인한 근육질이
▲ 초코렛춤
다. 붉은 벽돌로 된 미술관과 성당이 튼튼한 요새처럼 보인다. 그렇다. 12세기 알비는 카타르파 또는 알비파라 불리우는 종교집단이 번성했던 곳이다. 그들은 당시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판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대립하였는데 금욕생활을 하며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그들을 일반 국민들은 '선한 사람들'이라 부르며 좋아했었지만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이단이었다. 결국 북부 귀족들이 십자군을 조직하여 남부 귀족들을 공격, 알비파 교도들을 대량학살 했다. 지금의 미술관은 과거 대주교의 공관이었는데 바로 그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안전한 요새로 지어졌던 것이다.

미술관 입구에 연보라 수국이 피어있다. 붉은 벽돌의 무게감과 수국의 단아함이 어울려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조도 낮은 불빛 속에 도록을 통해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극장 복도의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이앙>. 1894년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것이다. 그림 속 인물은 로트렉의 외척이며 의사인 셀레이앙이다. 로트렉은 그를 몽마르트의 밤 생활에 끌어들였고 어디든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로트렉은 그를 공연히 조롱하고 자주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는 늘 무덤덤하게 충실한 친구로 남아 주었다.

그림 속 붉은 바닥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생생한 원색. 도록이 가질 수 없는 힘이다. 전시중인 작품들은 드로잉, 유화와 수채화, 그리고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포스터와 석판화등 다양하다. 특히 로트렉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은 1891년 제작된 석판 포스터 <물랑루즈-라굴뤼>.  
▲ 물랑루즈 - 라굴뢰 포스터


물랑루즈의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 받은 로트렉은 인기 댄서 라 굴뤼의 춤추는 모습을 중앙에 두고 앞쪽으로 특징적 옆 모습의 발렝탱을 배치했다. 일본 판화의 영향이 확연한 이 작품은 최초의 현대적인 포스터로 인정 받고 있다. 밖으로 나와 미술관 뒤편으로 간다. 이곳의 정원은 프랑스에서도 자기네 나라의 중세 정원의 모습이 잘 보존된 몇 안되는 곳이란다. 후원에서 바라본 미술관은 타른 강의 풍광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그리고 이단의 집단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는 성벽이 더욱 아스라이 높고 견고해 보인다. 정말 세상 일은 모른다. 한때 버려지고 퇴폐적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던 로트렉이 붉은 성벽 저 안쪽에 소중하게 소장되어있는 것이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 프랑스의 화가. 남부 프랑스 알비에서 출생. 본래 허약한데다가 소년 시절 다친 다리의 성장이 멈춤. 파리로 나가 미술 학교에 다녔으며 드가, 고흐와 친분을 맺어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몽마르트르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술집, 매음굴 뮤직홀 등의 정경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 석판화와 포스터로 이름을 알렸으며 37세의 나이로 요절. 흔히 후기 인상파로 불린다.

 

 

 

 

■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

▲ 로트렉 미술관
 주소  Palais de la Berbie F-81003 Albi France
 전화 +33 (0)5.63.49.58.97
 개관시간: 7월과 8월은 매일 개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머지 기간에는 정오 12시부터 오후 2시 점심시간 쉼. 10월에서 3월까지의 동절기에는 화요일 휴관이고 개관 시간이 10시로 늦춰짐.
 요금: 어른 5.5 유로. 13세 이하 무료. 가족 13.5유로(어른 2명과 13세 이하 어린이)
 부대시설: 상점.
 가는 길: 파리에서 툴루즈까지 비행기. 툴루즈에서 기차나 버스로 이동 가능. 툴루즈에서 알비까지는 76km. 차로 1시간 거리. 기차로 파리에서 알비까지 직통은 하루 7차례 9시간, 보르도까지 TGV를 이용하면 6시간 소요. 알비 역에서 시내 중심까지는 걸어서 10분. 파리에서 알비까지 승용차로 8시간 소요 690km.

www.museetoulouselautrec.net

 


■ 여행 팁 ─────

알비 시내 중심가는 반나절 관광으로 충분. 유명 관광지가 아닌 관계로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지치면 타른 강가에서 휴식. 시내엔 숙소와 식당이 여유 있어 여행에 불편이 없다. 근처의 작은 마을 꼬르드 쉬르 씨엘에 가보자. 알비에서 20km. 소위 말하는 언덕 위의 '독수리 둥지' 마을. 중세의 마을 모습이 온전히 보존 되어 있다. 작가 알베르 까뮈가 좋아해 자주 방문했다는데 시간이 멈춘 중세의 마을에서 하루를 묵어 보는 것도 좋다.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프랑스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식당도 여럿 있다. 
* 알비 관광청 http://www.albi-tourisme.fr/ 

* 꼬르드쉬르시엘  http://www.cordessurciel.fr/






윤봉한 _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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