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전형이 있다면 발자크(1799~1850)는 그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는 인물이다. 훌륭한 인물이나 거친 우리 삶의 등불로 앞세울 전형이 있다면 또한 발자크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본받을 만한 삶을 살다간 사람,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 이룬 인생의 성공적인 롤 모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어두운 시절에 고상한 경전 속에서 갓 건져낸 것 같은 이야기들은 많고도 많다. 소설가의 전형이라는 것, 좋은 책의 전형이라는 것에서 전형은 고정관념이다. 물론 고정관념은 깨라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깨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볼 때 어리석음과 위대함이 극명하게 공존하는 삶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어리석음과 위대함이 공존한다는 것 또한 찾아보기 힘든 예지만, 발자크의 삶과 문학은 그것을 실현해 준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단지 큰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소설을 쓰면서 벌인 갖가지 온갖 어리석은 사업은 어느 것 하나 실패하지 않은 것이 없는 실패의 대가 발자크. 결혼이란 경제적 안정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백작부인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닌 속물적인 인간. 그러나 돈과 결혼에 대한 독특한 사고는 그 시대 사회적 배경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막 시민계급이 정권을 잡고 부르주아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였으므로 돈이 그 시대의 맹목적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이렇게 극단적인 삶을 살고 싶을까. 누가 이렇게 끝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고 싶을까. 누가 자기가 쓴 글의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삶을 살고 싶을까. 끝없이 귀족을 숭배하다 마침내 스스로 귀족칭호를 부여한 이 속물이 쓴 소설의 인물은 2천 명에 이른다. 그 중 460명은 그가 쓴 97편의 소설 속에 끝없이 등장하면서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건들에 유기적으로 결합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의 소설의 위대함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속물적인 소설가의 위대성은 또한 글에 대한 집중력과 끈기라고 할 수 있다. 귀족부인을 쫓아다니기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번 글에 미치면 하루에 커피 50잔을 마셔가며 노동을 해낸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다. 뼈 속까지 귀족을 숭배했지만 정작 작품 속의 귀족들은 아이러니와 모순덩어리로 묘사해 낸 그는 결국 글쟁이였다.
 
600쪽에 이르는 한 사람의 평전은 순식간에 읽힌다. 그것은 츠바이크가 발자크의 삶과 문학을 애정어린 눈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는 모순적인 삶을 살다간 한 인간의 소설 같은 삶의 힘이 아닌가 싶다. 빚쟁이를 피하기 위해 항상 뒷문이 있는 집에 살아야 했고 언제나 실패하기 위해 일을 벌인 소설가. 그는 내 책읽기의 파격이었고 내 인생의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었다. 드디어 그렇게도 공들인 백작부인과 결혼한 해에 죽고 만 그의 운명은 파격의 성공적인 본보기였다.


>> 조말선은
1965년 김해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현대시학 등단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제7회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시집 '매우 가벼운 담론', '둥근 발작'을 펴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