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홍자 영운초등학교 전담사서

비 오는 날 먹는 구수한 수제비는 별미 중 별미다. 잘 우려 낸 육수에 제철감자와 애호박을 넣어 끓여내면 진수성찬 이 부럽지 않을 맛을 낸다.

내가 여덟 살 쯤 되었을 무렵 여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호롱불 아래 아이들은 앉아 일기를 쓰고 엄마는 다음날 아침 반찬거리를 준비하곤 했었다. 엄마가 감자를 닳은 숟가락으로 긁는걸 보니 내일아침 반찬이 감자볶음 인가보다 생각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닭장에서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여 밥상 앞에 앉았는데 뽀얀 이밥대신 수제비가 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낯설은 느낌에 무거운 침묵을 깨고 내가 말했다.

"엄마! 왜 아침에 수제비를 먹어? 수제비는 저녁에 먹어야 하는 거 아이가?"

끼니거리가 없어 먹게 된 메뉴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쏘아 붙이듯이 말했다.

"니 감자 마이 넣은 수제비 좋아하잖아 엄마가 오늘 늦잠을 자는 바람에 밥할 시간이 없어 수제비 끓였어. 어여 먹고 학교 가야지".

"근데 엄마 아침에 수제비를 먹으니까 이상해. 배도 안 부르고 맛도 없고."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책가방을 둘러메고 부엌을 지나 사립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부엌 안에서 불도 때지 않으면서 아궁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 학교 간 대이" 너스레를 떨며 엄마를 쳐다보는데 가슴에 무거운 바윗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앞치마를 뒤집어 코를 훔치는 엄마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죄인처럼 간이 콩알만 하게 쪼그라 드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아버지에 대해 화가 났다. 그러나 난 아무 말도 못했다. 아는 척 하면 엄마가 엉엉 울어버리거나 사라져 버릴 것 만 같았다. 엄마는 나의 기쁨이고 슬픔이고 전부였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부모님이 없다. 기억이 자리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탓에 엄마는 배고픔을 너무 일찍 경험하였다. 배부른 기억보다 배고팠던 기억이 더 많았던 엄마는 따뜻한 밥이 엄마가 주고 싶은 최선의 사랑이었다. 어쩌다 양식이 떨어져서 먹었던 수제비가 엄마에겐 배고픔으로 마음이 아팠던 지난날을 떠 올리게 했던 것이다. 자식에게 배고픈 기억은 절대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매일 다지며 살았다고 했다. 곡식을 빌려서라도 자식은 배고프지 않게 해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한 염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부모의 도리를 져버린 듯 한 자책과 슬픔으로 뒤섞인 엄마의 눈물이었다. 장마가 잠시 쉬던 날, 처음으로 본 엄마의 눈물은 잊을 수가 없다.

꽃처럼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던 엄마였다. 그랬기에 아침에 수제비를 끓여주고 돌아서 울던 엄마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 아프게  남았다. 그 이후 어른이 되면 절대 우리엄마를 울리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어릴 적 가끔 먹곤 했던 수제비를 지금은 먹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식욕마저 변하게 하는 가 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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