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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눈병수정안과가 지키는 '눈건강' (36)
  • 수정 2019.08.07 09:35
  • 게재 2019.08.07 09:31
  • 호수 433
  • 10면
  • 박수정 수정안과 원장(report@gimhaenews.co.kr)

"이제 나의 안질(眼疾)은 다 나았다." 세종대왕께서 매우 기쁜 마음으로 신하들에게 선포하였다. 이때가 세종 32년 1449년으로 왕께서 승하하시기 불과 1년 전이었다. 왕께서는 오랫동안 안질 즉 눈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는데 돌아가시기 불과 1년 전에야 잠시나마 눈이 편해졌던 모양이다. 세종일지에 "임금이 모든 일에 부지런하였고, 글과 전적(典籍)을 밤낮으로 놓지 않고 즐겨보다가 안질을 얻게 되었다."는 글이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왕께서는 24세경부터 안질에 걸려 44세경에는 어두운 곳에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왕께서 젊은 나이 때부터 눈이 나빠진 것은 지나친 독서로 눈을 혹사시킨 것이 주된 원인으로 보이며, 근시, 난시, 안구건조증,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등의 안질을 앓고 계셨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왕께서는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을 상할까봐 걱정이 된 아버지 태종이 책을 모두 치웠는데, 책을 다 치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책 한권을 왕께서 발견하고 무척 기뻐하면서 그 책을 몰래 숨어서 수백번 읽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왕께서는 신하들이 올린 글을 매일 밤마다 읽으며 틀린 곳을 바로 잡았고 신하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자주 얘기하였다고 한다. 어떤 신하가 "밤에 가는 글씨를 보면 눈병이 날까 두렵습니다." 라고 걱정을 했고, 왕께서 "경의 말이 옳다. 내가 조금 쉬겠다."고 답했다고 하는 글도 보인다.

왕께서는 조선이 개국한지 5년 후인 1397년5월7일에 태어나서 11세인 1408년에 충녕군, 16세인 1413년에 충녕대군으로 봉해졌다가 21세인 1418년 6월에 형인 양녕대군으로부터 세자를 물려받아서 세자로 책봉되었다. 세자로 책봉된 지 불과 3개월 후인 9월에 태종이 갑자기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조선 제4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으로서의 정상적인 집무는 1422년 태종이 승하한 후인 즉위 4년 후부터 시작되었다.

세종실록에 세종 23년 2월에 "내가 안질을 얻은 지 이제 10년이나 되었다."라고 하고. 그해 3월에 "온양에서 온천을 한 후에 눈병 치료에 효험을 보았다."는 글이 나온다. 또 충청북도 청원에 행궁을 짓고 탄산수의 일종인 초정약수로 눈병 치료를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년 뒤에는 "온천에서 목욕한 이후 눈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토로하는 글이 보인다. 이천과 온양 등에서 온천을 했지만 예전과 같은 효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왕의 눈병은 온 나라 국민들의 큰 걱정거리였다. 세종 27년 3월16일에 온양에 사는 90세의 문을경이라는 노인이 안질약을 갖다 바쳤고 왕은 노인에게 옷과 신발, 쌀 3석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떤 조사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자를 세종대왕으로 알고 있는 국민은 10명 중 불과 2명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공동 창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눈병에 시달려가면서 몸소 만드신 것이고, 집현전 학자들은 왕의 가르침과 지시에 따라 훈민정음 안내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로 인정받고 있는 한글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고유의 단독 작품인 것이다.

왕께서는 눈병 이외에도 비만, 수전증 등을 앓고 계셨는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격무로 인해서 승하하시기 전 8년간은 세자인 문종에게 섭정을 맡겨서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모든 결재를 넘겨주었다. 그렇지만 추구해오던 주요 과제들은 하나도 멈추지 않았고 매일매일 새로 편찬한 책들을 하루에 수십권씩 직접 검토하였다고 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세종 25년인 1443년이고 반포한 것이 세종 28년인 1446년이므로, 왕께서 승하하시기 불과 4년 전에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를 한 시기에 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일곱째 아들인 평원대군, 그리고 왕비인 소헌왕후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의 상심이 커서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더욱이 승하하기 직전의 마지막 2년은 세자였던 문종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한때 중태에 빠지기도 했으므로 왕께서 거꾸로 세자의 업무를 대신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명을 재촉한 셈이 되고 말았다. 1450년4월8일, 왕께서는 왕위에 계신지 33년째인 53세를 일기로 온 국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승하하시고 말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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