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에게 보낸 교황의 편지
'직지'의 활자주조법이 담긴 성경…
 팩트와 픽션… 반전과 충격…
 세계 最古 금속 활자본 '직지'
 유럽 전파 과정 진실 찾기
 현재·중세 넘나드는 장편소설



부산 출신인 김진명 작가는 1993년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정치·경제·역사·외교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주제를 소설에 끌어들여 남다른 인식의 깊이를 보여줬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소설 <직지>도 시의적절한 주제를 치밀한 분석과 통찰을 통해 탄탄한 서사와 역동적인 전개, 흡인력 강한 문체로 그려냈다. 전작들처럼 이번 소설도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를 둘러싼 중세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치밀한 자료 조사와 프랑스 등 현지 취재, 현대 과학의 성과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금속활자 전파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다가선다. 소설은 현재를 배경으로 시작되지만, 조선 세종대와 15세기 유럽으로 시공간을 넓혀가며 정교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인간 지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유산을 둘러싸고 지식을 나누려는 자들과 독점하려는 자들의 충돌,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인물들의 기막힌 운명을 선보인다.

'직지'의 본래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로 '백운화상이 편찬한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 글귀'를 뜻한다. 직지는 고려 말인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인쇄되었는데 현재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작가는 최근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전파되었다는 주장과 증거를 주목한다. 특히 바티칸 수장고에는 교황 요한 22세가 1333년 고려의 왕에게 보낸 거로 해석되는 편지가 보관돼 있다. 일부 유럽 학자들은 양피지에 쓰인 이 편지의 수신인 '세케'를 충숙왕으로 해석하며 이미 고려 시대에 교황청과 고려 사이에 왕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요한 22세의 이 편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전에 유럽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 때문.

이에 대해 구텐베르크 박물관 측을 비롯한 독일 학자들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제조 방법이 아예 다르다는 주장으로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직지의 인쇄면과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직접 비교한 결과, 구텐베르크의 성경에 직지의 활자주조법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을 눈여겨본다. 작가는 이런 사실적 근거 위에서 유럽에 전해오는 동방의 두 승려 이야기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직지가 유럽에 전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소설은 일간지 사회부 기자 김기연이 기괴한 살인 현장을 취재하면서 시작된다. 무참히 살해된 시신은 귀가 잘려 나가고 창이 심장을 관통했다.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언어학과 교수. 기연은 살해된 교수의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최근 목적지가 청주 서원대학교임을 알아내고, 그의 휴대폰에서 '서원대 김정진 교수'라는 사람을 찾아낸다. 김정진 교수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라 확신하며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

범행동기와 살인 현장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고민하던 기연은 전 교수의 서재에서 결정적 단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남프랑스 여행안내서와 책에 적힌 두 사람의 이름으로 스트라스부르대학의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였다. 기연은 전 교수가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가 두 사람을 만나보려고 프랑스로 날아간다. 거기엔 기연이 상상도 못 한 반전과 충격적 사실이 기다린다. 금속활자에서 한글, 반도체로 이어지는 지식혁명의 씨앗을 찾아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려는 작가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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