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정 수필가

뜨거운 여름 한낮, 후텁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쏟아져 나오는 매미의 울음이 청아하다.

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수많은 개체가 어울려 한꺼번에 내는 저 소리는 분명 우렁찬 합창 소리가 틀림없다. 오래된 팽나무 군락지 옆에 있는 우리 집은 여름 한 철 매미의 노래로 귀가 호강을 하다못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텃밭의 채소들도 화단의 꽃들도 노래를 듣고 자라고 꽃피운다. 만물이 지쳐 늘어진 계절에 매미는 저 혼자 활기차고 즐겁다.

17년 동안 땅속에서 살다가 번데기의 형태로 지상으로 올라온 후, 비로소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된다는 매미, 그 긴 기다림의 세월에 비하면 여름 한 철 2-3주간의 생이 너무나 짧다.

그러니 개미들이 부러워한다는 매미의 팔자가 그리 좋은 편은 못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는 모두 28종이라 하는데, 종류마다 우는 습성도 다르다고 한다.

말매미, 참매미들은 오전에 울고, 유지매미, 애매미 종류는 오후에 운다고 하니 목청 다듬는 시간이 충분할 듯하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털매미는 가히 무리 중의 우두머리가 아닐까 싶다. 암매미는 울지 않고 수컷만 운다고 하는데, 그것도 암컷을 향한 구애의 표현이라 하니 암컷이 난청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목청 큰 수컷을 선호하는지 프러포즈 한 번 거창하고 요란하다.

무더운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서 휘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으로 매미의 노래를 따라잡다가 스르르 잠이 들 즈음 앵 ㅡ애 앵 난데없는 사이렌 소리로 잠을 깨우기도 한다. 잠 못 드는 열대야의 밤에도 그치지 않는 매미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가로등 불빛을 보고 낮으로 착각하는 우둔한 매미에게 안면 방해죄를 적용할 수는 없으니 지혜로운 인간이 참아야지 도리가 없다. 그러나 저 소리가 없다면 여름은 얼마나 적막하겠는가. 매미의 합창 소리는 분명 계절이 주는 축복이다.

이제 팔월도 중순이 지나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 절기가 다가온다. 처서엔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데, 매미는 어떨지 모르겠다. 치열하게 살아낸 몇 주간의 삶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풀숲에서는 귀뚜라미들이 자기들 차례를 기다리며 수런대는 낌새가 보인다. 떠나는 매미와 돌아오는 귀뚜라미의 조우로 마지막 여름밤의 환상적인 화음을 기대해 본다.

매미 소리가 사라지면 가을이 온다는 신호다. 더위에 지친 심신은 가을 소리만 들어도 반갑지만, 매미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조금 섭섭하다. 어느 날 약속이나 한 듯이 소리가 사라진 공간이 너무 허전할 것 같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매미의 합창 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졌다. 더위를 축복하듯 즐기는 매미들처럼 남아있는 여름의 날들을 우리도 슬기롭게 보내야 할 것 같다. 매미가 부르는 팔월의 노래를 따라 불러 볼까

풍물 장단이 아닌 트로트 버전으로 아주 신나게.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