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김해의 산을 거닐다
일몰의 산, 그 '적멸'의 아름다움에 취하다(10)까치산
  • 수정 0000.00.00 00:00
  • 게재 2012.01.17 13:44
  • 호수 58
  • 12면
  •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까치산 정상부 너덜바위에 서면 발아래 넓은 대동벌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멀리 부산의 진산들도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진/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김해의 산들은 '적멸의 아름다움'이라 일컫는, 일몰의 장엄함이 광대하다. 낙동강 서쪽의 산들이라 글썽이는 물빛과 함께, 한 생을 마감하는 노을이 깊고도 그윽하다. 마치 겨울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순백의 눈 위를 붉게 물들이는 비장함이 선연한 것이다.
 
겨울산행 중 이렇게 깊고 그윽한 일몰을 정상에서 만나는 일은 또다른 반가움이다. 지인을 통해 일몰이 아름다운 김해의 산을 몇 곳 추천 받았다. 그 중 한 곳이 대동면의 까치산이다. 백두산과 돛대산을 양쪽으로 끼고 있는 중절모처럼 생긴 산이다. 그래서 능선의 조망이 좋아 어디에서라도 일몰의 장관을 바라볼 수가 있다.

이번 산행은 까치산 정상에서 일몰을 맞는 '일몰산행'이다. 예안리 시례마을 입구를 들머리로 해서 능선초입 갈림길~능선~까치산 정상~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주동리 성안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 예안리 시례마을 입구 까치산 들머리(아래)와 세갈래 길(위)의 이정표.
겨울의 늦은 오후.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소에 내려 시례마을 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왼쪽으로 '까치산 정상 1.8㎞'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이 들머리이다. 초입의 오리나무 가지에는 여러 산악회의 안내리본들이 알록달록 매달려 있다. 산행 시작과 함께 곧이어 공동묘지가 나오고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사람을 반긴다. 오르막 산길로 오르기 시작한다.

해가 설핏 이우는 시간의 산행이라 숲 속 햇살이 그윽하다. 나뭇가지마다 참새 떼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수다가 시끄럽고, 멀리 시례마을 동네 개들도 덩달아 컹컹 짖어댄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산행이다.

간벌 잘된 소나무 숲을 걷다 보니, 가지 사이사이로 해가 걸려 빛이 난다. 그 햇살 따라 온 숲이 불붙는 듯 환하다. 화르륵 불타오르는 산길. 오르는 사람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는 시간이다. 이미 붉은 마음은 붉은 숲으로 들어가고 있다.

몇 안 남은 억새꽃이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하얗다. 씨앗을 털어내고 남은 늙은 몸뚱이가, 이렇게 고운 백발로 남아 정결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남루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비워냄으로써 오롯이 담겨 있는 그들의 마지막이 경건하기조차 하다.

이렇듯 햇살은 '무채색의 겨울산'에 생명의 불을 지펴 '황홀한 저물녘'을 만들어 낸다. 몇 안되는 겨울의 색감으로 이렇게 명징한 풍경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것을, 겨울산에 와서야 비로소 배운다.

정상에서의 일몰을 위해 길을 서두른다. 소나무 숲이 끝나자 참나무 숲이 길을 이어받아 산으로 오르고 있다. 길마다 참나무 낙엽들이 한 땀 한 땀 발자국 남기듯 길을 내며 앞선다. 길을 내어주는 낙엽들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계속 타고 오른다.

너덜바위에서 한 숨 고르고 뒤돌아본다. 드넓은 대동벌이 펼쳐진다. 대동벌의 비닐하우스들이 유리성처럼 반짝인다. 그 안에는 한창 푸릇푸릇한 생명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 몸들을 키워내고 있을 것이다.

오를수록 경사는 가팔라지고 너덜은 군데군데 자리 잡아, 발에 차이는 돌멩이를 데구루루 굴리고 있다. 산 아래 조망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부산의 진산들이 하나씩 고개를 내밀고, 낙동강과 서낙동강의 합수지점인 대동수문의 풍경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남양산고속도로와 부산김해경전철도 길게 뻗어 길을 내고 있다.

연리목 한 그루 길을 막고 선다.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기에 나무끼리 '붙었다 떨어졌다'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연모의 질긴 인연을 나무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 무슨 사연이 저리 깊은 걸까. 세 번이나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 연리목이 석양에 불타는 듯하다.

거의 45도 경사를 기어오르다시피 한다. 너덜은 쏟아질 듯 위태하고, 그만큼 발 아래의 풍경은 오를수록 수려하다. 백두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예안리 고분군도 성냥갑처럼 보인다. 곧이어 능선길 초입의 이정표에 닿는다. 성안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까치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부터 동, 서, 남쪽의 빼어난 풍광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김해벌과 서낙동강이 넉넉하게 펼쳐지고, 돛대산 능선과 백두산 능선이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길을 따른다. 멀리 보이는 까치산 정상을 향해 길을 잡는다.

이어지는 능선을 꼬불꼬불 걷는다. 겨울산행의 묘미 중 하나가 이우는 해와 함께 능선을 걷는 일이다. 이울고 있는 해를 등지고 걷자니, 멀리 길 떠나는 길손처럼 적요하기만 하다.

거대한 바위를 타듯 오르니 전망대다. 시례마을이 보이고 백두산과 장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무심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선암다리와 서낙동강 푸른 물굽이가 꿈틀대며 하류로 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까치산 정상 뒤로 신어산이 떡 버티고 섰다. 저무는 햇살 앞에 산들은 엄숙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거센 바람을 맞는다. 인간사 때 묻은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릴 요량이다.

전망대에서 길을 내린다. 시례마을 쪽으로 바라보니 백두산과 돛대산을 관통하는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김해의 산들 곳곳이 이렇게 절개되고 관통되고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까치산 능선에도 베어져 나간 나무들과 부러진 가지들이 길가로 드러누웠다. 그래서 겨울 까치산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멀리 장유봉 쪽으로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다. 햇볕 받은 나무들이 모두 붉다. 금강송 몇 그루는 더욱 붉어, 그 기운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금강역사의 팔뚝처럼 강인하게 뻗어 오른 품이, 세월의 순리를 거스르며 자기만의 길을 고집했던 듯 싶다.

   
▲ 까치산 정상부의 이정표.

까치산 안부에서 정상을 향해 오른다. 힐끗 본 백두산 정상이 노을에 빨갛게 불타고 있다. 낙동강 쪽 전망도 모두 다 열린다. 낙동강의 붉은 물빛 뒤로 금정산 전 능선이 병풍 치 듯 펼쳐지고, 천성산의 근엄한 자태도 제법 볼 만하다.

까치산 정상(342m). 시간을 제대로 맞춰 왔다. 장유봉 쪽으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까치산 정상에서의 일몰인 것이다. 장유봉 마루금이 선명한 선을 그으며 확연해진다. 그 위로 붉디 붉게 물이 드는 서녘 하늘…. 오호라! 적멸(寂滅), 그래 적멸이다. 저 꺼져 가는 생명의 장엄함. 마지막 존재의 비움. '소풍 왔던 세상, 잘 놀다 가노라'며 진한 울음의 웅혼함을 내지르는 저 적멸의 태양. 그가 사라지기에 밤의 어둠은 돋는다. 그 어둠 속에 달이 뜨고 별이 밝아오는 것이다.

내가 딛고 선 산에 서서히 어둠이 듣는다. 서둘러 하산해야 할 시간이다. 발길마다 어둠이 깊어 온다. 길 뒤로 참나무 가지의 실루엣이 명료하다. 쏟아지는 하산길의 비탈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스틱에 의지한 채 길을 내린다.

산 아래는 초저녁잠이 들 듯 깜빡깜빡, 성안마을 불빛 몇 개 졸고 있다. 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총총하고, 사위가 고요하다. 벌레소리 하나 없는 절대고요, 그 고요가 사람 마음마저 미치도록 가렵게 한다.

산을 모두 내린다. 어둠은 이미 깊어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느낌이다. 임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마을길. 참나무 낙엽 하나 등산 스틱에 묻어 동행하니, 이 또한 기껍기만 하다. 모든 이들이 귀중하게 생각되는 시간. 이 시간을 주동마을 깊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며 하염없이 내려오는 것이다.


Tip. 남명 선생 쩡쩡한 목소리 들리는 듯한 산해정(山 海 亭) ────
선비 정신으로 30년간 후학 양성

산해정 입구에 서니 맑은 물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겨울계곡임에도 이런 청아한 물소리가 끊임이 없으니 배움을 청하기에는 더 없는 자리인 듯싶다. 오른쪽으로 까치산이, 왼쪽으로 돛대산이 감싸고 있어, 남명선생도 그 산세를 보며 깊은 사색을 하셨을 게다. 높은 산, 깊은 바다 같은 학문의 세계를 꿈꾸며 말이다.
 

   
▲ 까치산과 산해정. 후학을 양성하던 남명 선생도 저 산세를 보며 깊은 사색을 했을 법 하다.

산해정 정문인 진덕문(進德門) 앞에는 남명선생이 이곳에서 지은 시편을 각한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산해정에 대나무를 심으며(種竹山海亭)'라는 시편이다. '대는 외로울까, 외롭지 않을까? /소나무가 이웃하고 있는데 /바람 불고 서리치는 때 아니더라도 /싱싱한 모습에서 참다움 볼 수가 있네.'

이렇듯 남명선생은 산해정에 대나무를 심으며,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굳건히 했던 것이다. 그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강학에 임했는지 잘 나타내어 주는 시편이기도 하다.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 위치한 산해정(문화재자료 125)은 조선 중종 때의 큰 선비, 남명 조식 선생께서 30년간 후학을 양성하던 강학 공간이다. 조선 선조 21년(1539) 김해인들의 청에 의해 김해부사 양사준이 정자의 동쪽에 서원을 착공했으나 왜란으로 중지된 것을, 광해군 원년(1609)에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서원(新山書院)이라 사액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철거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중수한 것이 지금의 건물인데 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서원의 두 공간 중 하나인 사당영역이 없고 강학공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산해정 앞뜰에 있는 몇 그루의 배롱나무. 헐벗은 나무줄기를 찬바람에 내맡기고 있다. 무서리 속에도 선비의 기상으로 겨울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 올해도 배롱나무는 여름 내내 붉은 꽃을 피워 낼 것이다.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처럼….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김해 어방지구 도시개발사업 체비지 매각 탄력김해 어방지구 도시개발사업 체비지 매각 탄력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비밀글로 설정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