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사람들 위한 굴리는 물통
식수 위해 수 ㎞ 걷는 노동서 해방
불편한 노인 위한 '아순타 의자' 등

실버·도시재생·커뮤니티 분야
인간에게 우호적인 디자인 소개



우리나라는 2017년 11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2%가 돼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고령 사회에는 디자인의 관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기존에 노인은 소비층에서 크게 고려되지 않았지만, 이제 소비 주체로서의 노인을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특히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기력과 근력이 약해져 일상에서 거동이 불편해진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란차베키아와 싱가포르의 디자이너 훈 와이는 함께 노인을 위한 가구를 디자인했다. 이들은 노인이 힘들이지 않고 스스로 의자에서 일어설 수 있는 '아순타 의자'를 개발했다. 의자에서 일어설 때 양쪽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으며 몸을 앞으로 숙이면 의자가 앞으로 기울어져서 혼자서도 손쉽게 일어설 수 있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이동을 도와주기 위해 지팡이와 수납공간을 결합한 생활 보조 도구인 '투게더 케인'도 개발했다.
 
투게더 케인에는 지팡이와 쟁반을 결합해 쟁반 위에 찻잔을 올려놓고 이동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유케인(U-Cane)'과 아래쪽에 수납함이 있어서 책이나 뜨개질 용품을 넣어서 이동할 수 있는 '아이케인(I-Cane)'이 있다.
 
<배려하는 디자인>은 이처럼 인간적이고 우호적이며 생태적인 태도로 제품과 세상의 관계를 회복하는 다양한 디자인 시도를 소개하는 책이다. 디자인 전문가인 저자는 유니버설·행동유도성·슈퍼노멀·감성·실버·공공·도시재생·커뮤니티·넛지 디자인 등 세상과 공존하는 열다섯 가지 디자인을 제안한다. 저자는 22개국의 다양한 디자이너들로부터 일상과 사회,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책 내용 가운데 개발도상국을 위한 디자인 부분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사막화로 인해 아프리카 등 많은 물 부족 국가 사람들을 위한 굴리는 물통이다. 물을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식수를 얻기 위해 수 ㎞를 걸어 힘들게 물을 길어 와야 한다. 물을 긷는 일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아이의 몫이기에 고충이 더 심하다.
 
굴리는 물통은 물을 긷는 노동에서 이들을 해방시킨 디자인이다. 지형이 거칠어도 힘들이지 않고 밀고 당길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물통을 배낭으로 지고 걸을 수도 있다. 용량은 약 40L이며 내장 펌프와 필터 호스가 포함돼 있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에는 지역 실정에 맞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통해 첨단 기술 없이도 작은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의 비영리 NGO 단체 뉴스토리의 3D 프린팅 주택도 개발도상국을 위한 디자인이다. 이 단체는 전 세계 노숙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3D 프린팅 주택건설 회사인 아이콘과 합작해 32㎡(약 10평)의 첫 3D 프린팅 주택을 짓는 데 성공했다. 완공까지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고 한 채를 짓는데 총 1만 달러가 들었으나, 향후 4000달러 정도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뉴스토리는 올 여름 중남미 지역에 역사상 최초로 3D 프린팅 주택으로 마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3D 프린팅 주택은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고 폐기물이 남지 않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지어진다.
 
'넛지 디자인(Nudge Design)' 부분도 눈길을 끈다. 넛지는 '팔꿈치로 꾹 찌르다'라는 뜻으로, 미국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공저한 <넛지>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넛지는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한다는 의미다. 강제적인 규제나 감시, 지시 대신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뜻한다.
 
'넛지 디자인'의 예는 영국의 자전거 시설 회사 사이클후프가 거리에 설치한 이색적인 자전거 보관대. 자전거 모양으로 디자인한 보관대는 멀리서도 자전거 주차 시설을 알아보게 한다. 자연스럽게 자전거 이용을 유도하는 친환경 공공디자인이다. 다양한 사례를 접하다 보면 디자인을 통해 사람과 사회, 환경이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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