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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골’을 통해 확인된 가야사람의 풍습 '편두'가야 문화 복원 프로젝트 - ④가야인의 풍습과 인골
  • 수정 2019.09.24 17:29
  • 게재 2019.09.24 16:02
  • 호수 439
  • 4면
  • 고영민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report@gimhaenews.co.kr)
▲ 정상 두개골과 편두의 X-ray 사진( 좌) 김해대성동고분군 85호, (우) 김해 예안리고분군 99호.

가야의 다양한 유적에서는 옛사람의 뼈인 '고인골' 자료가 많이 발견됐다. 고인골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 시대에 걸쳐 주로 무덤에서 확인되고 있다. 초기의 고인골 연구는 성별이나 나이, 신체적 특징과 같이 체질인류학적인 분야가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화학적 분석이나 분자인류학,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친족관계, 식생활, 영양학적 측면 등 기존에는 알 수 없었던 뼈 속에 감춰진 정보들이 보고되고 있다. 하나의 인골로 개인의 삶을 알 수 있다면 무덤 군에서 출토된 많은 인골은 당시 사회를 보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가야 문화권에서는 김해 대성동·예안리, 고령 지산동·본관리, 함안 도항리 등지에서 많은 고인골 자료가 출토됐다. 오늘날 우리는 가야시대 무덤에서 확인된 고인골을 통해 기록 속 가야사람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현재 파악된 것보다 가야 사람들은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가야의 대표적인 풍습은 순장, 편두, 발치, 문신 등이다. 이중 발굴조사를 통해 실제 확인된 가장 독특한 풍습은 바로 편두이다. 


유아기 때 머리 눌러 두개골 변형
김해 예안리서 출토, 여성 비율 높아
아프리카~남아메리카 세계적 유행 
미용·주술적 의미 등 다양한 이유 추정
국립김해박물관, 27일 편두 학술대회



■ 가야시대 가장 독특한 신체 변형 풍습
가야사람의 풍습에 관한 문헌 기록은 서기 3세기 중국의 진수(陳壽 :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이 대표적이다. 이 중 편두는 가장 극단적인 신체 변형 풍습으로, 1976년부터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김해 예안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편두로 변형한 두개골이 확인되었다.
편두(?頭)란 뼈가 성장하는 단계인 유아기 때 나무나 돌, 천 등을 머리에 둘러 두개골을 인공적으로 변형하는 것을 말한다. '편(?)'의 사전적 의미는 '납작하다'로, 삼국지에서는 '진한 사람의 머리가 모두 납작하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사관이 주목할 정도 영남지역에서 상당히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편두는 두개골 변형의 일종으로, 예안리 유적의 편두와 같이 돌로 눌러 변형한 납작한 형태나 끈 등을 감아 만든 장두형의 긴 두개골, 후두골 변형 등 세계적으로도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다. 편두로 보기 위해서는 특이하게 두개골을 변형한 형태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두개골과 비교하여 인공적인 변형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아프가니스탄 틸리야 테페 편두 인골이 쓴 황금관.
▲ 틸리야 테페 6호.


■ 김해 예안리 유적서 확인
김해 예안리 유적에서는 모두 210개체의 고인골이 출토됐다. 이중 편두로 변형한 두개골과 변형이 의심되는 개체는 모두 10개체이다. 이는 모두 서기 4세기 단계로, 5세기 이후에는 편두로 변형한 인골이 전혀 확인되지 않으므로, 비교적 짧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야 이전 시기인 가덕도 장항 유적이나 사천 늑도 유적 등지에서는 많은 인골이 발견되었지만, 편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아서, 이전 시기에도 유행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편두가 출토된 무덤은 동시기의 예안리 유적의 다른 무덤과 비교할 때 편두의 비율은 20% 정도이다. 또한 편두 인골이 출토된 분묘의 부장품은 적은 편이며, 여성 비율이 매우 높다.


■ 가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행 양상 보여 
편두, 즉 두개골을 변형하는 풍습은 가야에서만 행했던 독특한 풍습이 아니었다. 선사시대부터 유라시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분포 양상이 확인된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부터 행해진 독특한 풍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을 대표하는 고대 역사가인 헤로도토스(B.C.484∼425)는 지중해 일대의 고대국가와 민족에 대해 저술한 자신의 저서에서 편두를 독특한 습속으로 다루었다. 히포크라테스도 저서에서 편두를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해 저술하였다. 이처럼 편두는 고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던 신체 변형 습속의 대표적인 예로 인식되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편두는 신석기시대로 알려져 있다. 2011년에서 2014년까지 발굴된 중국 길림성 송눈 평원 일대의 호우타오무가(后套木?, Houtaomuga) 유적에서는 약 12,000년 전의 편두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와 가까운 러시아 연해주의 보이스만Ⅱ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도 두개골 변형 인골이 확인됐다.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지역에서도 편두는 유행했다. 서기 1세기경의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야 테페 고분군에서는 화려한 금관을 착용 한 채 매장된 편두 여성 인골이 발견됐다. 또한 동유럽에서는 4~7세기 많은 숫자의 편두가 확인됐다. 훈족의 대이동으로 알려진 이시기에는 초원 지역의 문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시기였다. 훈족의 중심지였던 헝가리와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는 수백기의 편두로 변형한 인골이 나왔다.


■ 편두는 왜 했을까?
이처럼 선사시대부터 편두는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영남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편두를 행했던 목적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알려진 것은 틸리야 테페 유적과 같이 황금 관을 쓰기 위해 편두를 하였던지, 훈족의 경우처럼 우월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계층을 구별하기 위해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예안리 유적의 경우 이러한 유적들과 상황이 다르므로 똑같이 보기는 어렵다. 다만 가야 사람들이 편두를 했던 이유는 성형을 위한 미용적인 목적이나 다른 계통의 사람과의 구분, 주술적인 기능 등 현재로서는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
 

▲ 편두 두개골 만드는 모습.(상상도)                                ▲ 예안리 유적 99호분 편두 인골 사진. 제공 = 부산대학교 박물관


■ 국립김해박물관, '가야사람 풍습연구-편두' 학술대회
고인골로 통해본 가야 사람의 풍습은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면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삼국지에도 기록될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며, 발굴조사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해준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풍습은 가야만의 독자적인 것은 아니었다. 편두는 고대 유라시아 전역에서 행해진 두개골 변형의 일종으로 특히 예안리와 같은 시기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같은 형태로 널리 유행하였다. 가야 사람이 가진 이러한 풍습은 고대의 동서 교류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볼 때 독특한 모습이 아니라 고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일 것이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편두에 대해 살펴보고자 '가야사람 풍습 연구 - 편두' 학술대회를 오는 27일 국립김해박물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 부산대학교 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학술 대회를 통해 김해 예안리 유적과 편두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해뉴스





고 영 민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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