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상대방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웬만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과 동물에게 부여한 공감 혹은 감정이입 능력 즉, 다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을 옆의 사람이 같이 느낄 수 있는 천부의 능력이 사라져가고 있는 서글픈 현실에서부터 학교폭력과 왕따라는 심각한 사회병리적인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은 학생들의 심리적 발달과 신체적 발달을 균형있게 도모하고자 하는 전인교육의 이상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야만적인 학교폭력과 왕따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일찍부터 온갖 경쟁에 내몰리면서 친구를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내 자식만은' '내 자식은 달라'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이기심이 자녀들을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게 만든 제일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사이버 공간에서 잔인하게 죽고 죽이는 폭력적인 내용의 컴퓨터 게임에 너무 많이 노출되다 보니, 사람은 실제로 맞으면 고통스럽고 괴롭힘을 당하면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사실 자체를 어린 학생들이 잊어버리거나 둔감해지게 되었다.

셋째, 자신의 욕구만족이 언제나 원하면 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가정 훈육이 거의 사라지고, 학교에서조차 교사들의 학생지도 권한이 크게 위축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여겨진다.

자녀 교육에서 우리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내 눈에만 사랑스러운 자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오히려 더 예쁘게 보이는 자식으로 키워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모가 가진 교육적인 가치와 이에 어울리는 행동의 기준을 자녀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치는, 그야말로 훈육이 살아있는 가정으로의 회복이 급선무이다.

학교폭력의 가해 학생과 부모들을 상담할 때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가해 학생 부모들의 대다수가 자기 자녀들이 근본적으로 잘못했다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가해학생들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 성향이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성향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모의 근원적인 태도 변화가 문제 해결의 시발이라 믿는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권리 위주로 되어 있는 학생인권조례도 학생들이 먼저 지켜야 할 의무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가치를 좀 더 담고, 무엇보다 교사들의 효율적인 학생 지도권을 존중하는 형태로 수정·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죄책감 없이 습관적으로 반사회적인 공격행동을 반복하거나 충동적 폭력 성향을 억제하지 못하는 학교폭력 상습 가해학생들은 지속적인 심리치료 및 행동치료의 대상임을 인식할 시점이다. 따라서, 교육당국이나 지자체 차원에서 전문적인 상담 및 치료기관을 설립·운영하여 가해학생들에게는 근본적인 치료의 기회를 제공해 줘야 한다.

이제는 각 학교마다 혹은 각 학년마다 상담전문 교사가 배치되어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에 대한 예방상담과 사후상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서,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교과목을 전담하는 담임교사 외에 학생들과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생활담당 담임교사제의 도입을 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학교가 지옥이 아니라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바꾸어 가기 위해서, 또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적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있는 첫 걸음을 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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