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에 우연히 아동보호시설에 봉사활동을 나갔다. 그곳에서 버려진 장애영아를 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탄생과 동시에 세상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찾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대학진로를 특수교육으로 결정했다.
 
'비록 보잘 것 없고 부족함이 많지만 나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아이라도 있다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장애영유아와 함께 한 지도 어느덧 24년째로 접어든다.
 
자유롭게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짓과 몸짓 그리고 눈짓에도 무한한 감사와 환호성을 느끼며 행복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난해 봄 어처구니없는 오해로 내 삶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듯한 일을 겪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절망감과 원인 모를 답답함으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그때 전혜성 박사의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을 만났다.
 
6남매를 미국 최고 명문대에 보내고 두 아들을 미(美) 국무부차관보로 키운 한국의 어머니이자 세계적인 사회학자인 저자가 은퇴 후의 막연한 삶, 불안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주는 책이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팔순이 된 나이에도 열정을 잃지 않고 의미있게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이 책은 불투명한 미래와의 암담함에 사로잡혀 끝없는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나에게 등불이 되어 주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 할지라도 불투명하다고 여겨지고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저 계속해 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도움과 의미가 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저자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나를 향한 손짓인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은 어느 순간 또 한 명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온전히 이해하며 들어주었고, 가끔은 생각 없이 내뱉는 나의 수다까지도 받아주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런 순간이 많다. 앞날이 불투명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누군가에게 큰 보탬이 되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또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어느새 외로움은 절반으로 줄어들고 고통은 즐거움과 보람으로 변할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라는 책 속의 이야기와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라는 부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다시 새기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 구미숙은
1965년 김해 출생.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김해의 장애영유아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남편 손재익 원장과 함께 김해에서 1992년 '언어치료실'를 개원하고, 2000년부터 '늘사랑장애전담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행정안전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주최 '2011 안전문화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체험중심 안전교육' 사례로 교육부분 장려상 수상 외, 관련 부분에서 수차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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