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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 장창(秋夜 長唱)시론
  • 수정 2019.10.23 09:16
  • 게재 2019.10.23 09:13
  • 호수 443
  • 11면
  • 김용권 시인(report@gimhaenews.co.kr)
▲ 김용권 시인

가을 추秋. 가을이면 온 몸에 멍이 든다. 살랑대는 바람에도 우수수 몸이 떨린다. 어디를 가도 감출 수 없는 바람의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산과 들,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것은 없다. 차마 하지 못한 말과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이곳저곳으로 떨어져 뒹굴고 있다. 가을 '秋'의 뜻글자를 풀어보자면 메뚜기를 불(火)에 태워 농작물(禾)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락 들판이 비워지고 곡간으로 들어선다. 이때, 농부는 바람의 끈을 자르고 가장 부유해지는 시간의 육즙을 짜내는 것이다.

농부의 가을은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이때쯤이면 많은 행사들이 열리기도 한다. 휴일이면 어디를 가도 축제 인파들로 북적인다. 가을 소풍, 가을운동회란 말만 들어도 아련함이 물씬 풍기는 유년의 어느 한 모퉁이로 나를 데려다 놓곤 한다. 어디에서나 같이 구르고 노래 부르고 싶은 가을 정령이 눈뜨는 날이면 법문을 외우듯 들판은 흔들고 뛰어다닌다. 천지를 떠도는 바람, 그 바람은 사람 쪽으로 불어왔다. 나는 그 바람 속에 서있다.

밀 추推. 둥지에서 깨어난 새가 다른 새를 밀어뜨리듯이 어제의 쓸쓸함이 오늘을 밀어내고 있다.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은 바람 속에서만 사는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밀고 간다. 달빛은 은근히 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나를 밀고 들어서는 달빛에 괜히 얼굴 붉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이유들이 달빛에 밀고 밀린다. 기러기 발자국이 어지럽게 물위로 찍힌다.

따를 추追. 거울을 들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한 계절이 지나는 곳에서 평면거울을 들고 내 얼굴을 비춰보면 한 순간에 뚝 그친 시간이 있고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이 있다. 내가 따라가는 것일까? 결핍과 과잉의 시간 속에 감춰진 사랑의 비밀을 본다. 짤랑거리며 세월의 단추를 끄르는 바람, 잘 마른 바람 속으로 비가 내렸고 번개가 쳤다. 그러나 사랑은 넘치게 되면 실증을 유발하게 된다. 나는 조금 모자라는 사랑을 한다. 모자람이 나를 간절하게 하는 속성이 있다. 그 사랑을 따라간다.

세월의 흐름 앞에 나는 제어할 틈도 없이 따라간다. 아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쫒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의 시간들은 새롭고 따스하며 향기를 풍기며 오지만, 내가 만들고 내가 나눈 시간 앞에 나는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흐르는 시간은 나에게 슬픔을 켜는 따뜻한 방식을 던져 주었지만 나는 그것을 다 알아채지 못하고 버린다. 단풍 물로 해가 지고 내일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라도 추모의 걸음을 사랑이라 여기며 따라간다.

떨어질 추'墜'. 젖지 않는 것은 마르지 않는다. 마른 것들이 떨어지고 있다. 말라서 바스락 거리는 단풍들, 고독을 나눠주기 좋은 곳, 사랑을 담아두기 좋은 곳으로 오래된 습관처럼 떨어진다. 그곳이 나무의 중심이며 나무가 걸어가는 방식이다. 중심을 버리고 떨어지는 것들이 결국 빈 공간을 채우게 되고 그것이 다시 사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바람이 끝나는 그곳에서 꽃잎이 사람처럼 떨어진다. 내가 그 옆에 젖어서 살고 있다.

중심은 사물의 모든 것을 수용한다. 삼라만상이 별개의 존재인가 싶다가도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중심을 놓친 추락의 공간에서 다시 반등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생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어느 날 내가 사랑한 것들을 돌아보았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바람의 환영이었다면 실망은 클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바람에 산화하는 수숫대처럼 다시 올 바람을 기다리면서 서 있는 것이다.

다할 추'楸'. 습관처럼 떨어질 좌표를 그린다. 그리고 나는 따라간다. 새로워지고 싶은 공간에서 다함은 새로움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우주의 표숙자처럼, 별다른 수식 없이 꺼내 놓은 문장처럼 지구라는 행성을 떠돌다 간다. 확 불 지르고 싶은 가을의 의무는 내 마음 속에 있다. 소화기 하나 꺼내어 불 지른 마음에 뿌려 본다.

나는 이 가을에 쓸쓸함과 외로움을 찾아가는 바람이 된다. 쓸쓸함과 외로움에 몸을 버린 인간이 될지라도 침묵으로 유랑할 시간을 더듬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닿은 곳마다 찬란한 생각들이 익는다. 가을바람은 떨어지는 침묵의 시간들을 확인하고서야 저만큼 멀리 갔다. 비로소 내가 떠나보낸 상자에 사랑이 담겼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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