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규 김해뉴스 독자위원·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김해' 하면 퍼뜩 드는 생각은 500년 금관가야 도읍지란 유구한 역사 도시,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바람에 일렁이는 낙동강이 선사한 삼각주의 더 넓은 김해평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던 노무현 대통령이 태어나 잠든 봉하마을과 화포천이 아닐까? 또 진영 단감과 진례분청도자기가 유명해 매년 축제가 열리는 도시라는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 너머엔 난개발의 대명사라 불리는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 또한 떨쳐내기 힘든 현실이다. 김해의 산자락 구석구석에는 헬 수 없는 작은 공장들이 한여름 소(牛)의 몸 구석구석에 숨어 피를 빠는 가분나리(진드기)처럼 성가시게 박혀 있다.

내가 사는 김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인구 80-100만의 덩치 큰 도시면 시민들이 행복할까? 평야로서의 면모에 이미 치유 불능의 상처로 만신창이가 돼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김해평야의 숨골까지 메꿔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우리의 삶은 지속 가능할까?

독일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는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386년 설립) 하이델베르크대학교가 있고, 과학·법학·철학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유학생과 학자들이 몰려든다.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강은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데, 강 위 유람선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이 '작은 거인'의 도시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관광업으로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광업은 그야말로 굴뚝 없는 공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를 먹여 살리는 젖줄이다.

청년실업 증가와 함께 학자금 대출 부담, 치솟는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 또는 미루는 20-30대가 늘어난 3포세대(三抛世代),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五抛世代),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七抛世代)란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의 도시들은 덩치 키우는 일에 안달이다.

창원도 김해도 예외가 아니다. 출생률은 낮고 평균수명은 길어 도시 역시 농촌처럼 점점 늙어간다. 텅 빈 아파트가 늘고 머잖아 지방소멸이 현실이 된다 해도 끊임없이 신도시와 아파트를 짓는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는 흐름에 둔감한 산업현장에는 문을 닫는 공장들이 즐비해도 여전히 새로운 산업단지와 공단조성이란 구시대 빛바랜 개발정책들을 쏟아낸다. 부산에서 창원에서 김해로 전입 인구가 늘어도 그것은 풍선효과이자 제로섬게임일 뿐이다.

자, 위에 든 김해만의 장점을 앞에 두고, 조금 긴 호흡으로 발상을 전환하자. 금관가야(역사, 관광, 일자리), 김해평야(6차 산업, 농업, 일자리), 낙동강·화포천(환경·생태, 관광, 일자리), 민주주의(노무현, 봉하, 생태농업, 일자리), 그리고 진영 단감, 분청도자기, 상동 산딸기 와인, 장군차 등등. 김해라고 작은 거인 한국의 하이델베르크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이제부터 하드웨어보단 소프트웨어로 눈을 돌리자. 양보다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앞에 놓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지혜를 짜내 보자.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지난 5월 9일부터 19일까지 대산농촌재단이 진행한 유럽 농업연수에서 독일 바이에른주 요셉 휘머(Dr. josef Hiemer·켐프텐시 전 농업국장) 박사가 "바이에른주는 독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농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없으면 지금의 자연경관은 없다." "농업정책을 수립할 때 꼭 염두에 둘 4가지는 첫째.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 둘째. 토양 및 물 보호. 셋째. 생물 다양성의 보존과 증진. 넷째. 전형적인 지역문화경관 보존과 관리"(한국농어민신문, 2019. 6. 7)라고 했다는 얘기는, 도농복합도시 우리 김해시가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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