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대 이원로 총장이 최근 발간한 시선집 '시집가는 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 때 습작 시작 1989년 정식 등단
여태 펴낸 9권서 10여편씩 선정
"생명에 대한 해답 찾는 과정 담아"

인제대학교 이원로(75) 총장은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타운대학 교수로 20년간 재직하다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로 귀국했다. 일산백병원장과 백중앙의료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세간에 심장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의학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총장이 무려 9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총장은 지난달 그동안 펴낸 9권의 시집에서 각각 10여 편의 시를 선정해 엮은 시선집 '시집가는 날'을 발간했다.
 
총장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날카로운 눈매와 오똑한 콧날이 돋보이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고령임에도 예리하면서도 강인한 의사의 인상이 먼저 느껴졌다. 하지만 점차 대화를 이어갈수록 강한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와 품위가 넘치는 언변으로 문학가의 모습도 느낄 수 있었다.
 
"의술과 시가 과학과 인문, 이성과 감성이라는 점에서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지 않습니다. 과학은 무질서해 보이는 혼돈 속에서 논리적 법칙을 찾아내는 학문이고, 예술도 구체적 사물이나 사실의 다양성 속에서 보편적인 정서나 진리를 찾아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의학박사로 알려진 이 총장이 문학의 영역까지 섭렵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천재적인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상상하는 것이 지식보다 우월하다'라고 말했지요. 과학의 진리는 어떠한 현상을 측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고 발전시키는 것에 있지요.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상은 사람의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과학과 예술이 다르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학기술도 결국 높은 경지에 이르면 하나의 예술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미 9권의 시집을 낸 이 총장이 문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 전이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시기는 6·25가 끝나고 정전협정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 분위기는 희망과 낭만이 한껏 무르익어 있었지요. 제가 다니던 의예과가 문리과 대학 소속이어서 문과 학생들과 어울리며 교양학부 문학강의를 취미 삼아 청강했었습니다. 그때 보들레르, 랭보, 엘리어트 같은 시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 후 틈틈이 혼자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고 한 편씩 모아두었는데, 우연한 기회가 와서 제 작품을 응모해 등단을 하게 됐지요."
 
이 총장은 대학 강의와 진료, 연구, 대외활동 등 바쁜 일정 속에서도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고, 1992년 첫 시집 '빛과 소리를 넘어'(문학아카데미 펴냄)를 발간했다.
 
이 총장의 시를 읽어 보면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영적인 사색 또한 엿볼 수 있다. 이 점은 이 총장이 집필한 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심장 전문의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면서 생명과 삶, 우주, 절대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것을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기와 달리 시는 나름대로의 격식이 있고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결국 자기의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저는 시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과정으로 봅니다."
 
사색과 독서 그리고 시를 쓰며 여가시간을 보낸다는 이 총장은 올해 중 10번째 시집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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