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가야여성문학회 회장

반에서 15등이라는 성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성적순위가 60명 중 10등에서 15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고교시절 늘 스스로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평범'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떠나, 당시 학교에서는 성적 순위가 그 사람의 평가기준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한다.
사실 평범하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리라. 그 대척점에 고난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

'반에서 15등', '90년대 출생자 중 가장 많은 이름 유진이', '지방대학 졸업생'. 이 세 말들의 조합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는 우리나라 90년대에 출생한 2,30대 젊은이들의 가장 평범한 캐릭터를 의미한다. 그저 평범한 '반에서 15등 지방대학 출신 유진이'가 우리나라에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을 일러 삼포세대, N포세대라고 자조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삼포에다 긴 취업 준비 기간으로 거리로 내몰리며 주거, 취업까지 포기한 N포세대. 이는 청년층들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절망, 분노가 섞인 가슴시린 단어다.

예로부터 결혼과 출산은 인류보편적인 문화였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여정에서 거치는 보편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수많은 유진이가 어찌해서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마저도 포기해야할까.

언젠가 KBS 스페셜에서 '우리반 15등 유진이 이야기'라는 다큐가 방송됐다. 유진이라는 취업준비생의 취업준비에서 면접시험, 취업에 이르기까지 밀착취재로 이루어진 다큐다.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심각한 고뇌에 빠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취업을 위해 알바를 뛰며 개인공부와 학원공부, 면접스터디 등 하루하루를 꼬박 취업준비에 바치는 젊은이들. 백번이 넘는 서류제출과 가뭄에 콩 나듯 주어지는 몇 번의 면접 기회, 그리고 연이은 불합격, 불합격 소식. 삼포를 넘어 취업마저 포기하고 마는 N포세대의 위태로운 젊은이들.

우리 사회에서 '평범'이란 단어가 요즘은 평범하지 않고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말이 되었다. 평범에 못 미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되면서 이 체제가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잠잘 곳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나가 노동하고 하루세끼 밥 먹고 약간의 문화생활을 하며,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여 자식 낳아 인구보존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회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람을 대신 하는 기계와 로봇이 등장하고 파업을 모르는 기계들로 노동력을 채우는 효율성의 논리가 작용한 바도 크다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대신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무력화 시켰다. 그래서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인간에 있어 노동은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욕이 생겨나고 삶이 진행된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그렇게 힘듭니까?"

유진이의 방송 마지막 멘트다.

수많은 유진이가 우리 사회에 던진 힘없는 절규리라.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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