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권 시인

나는 기다린다. 오지 않는 것들을, 세상에 없는 것들을, 천천히 읽고 또 쓴다. 무념의 세계, 기다림에는 포착의 미학이 숨어있다. 북두칠성. 저 깊은 계곡을 누가 먼저 건너갔는가? 속도에 중독된 사람들이 길을 찾아 떠난다. 배고픈 자 국자를 들고 주름상자 같은 자신을 파먹고 있다. 비산되는 시간을 인화하면서 선연히 떠오르는 퇴행을 못질해 놓으면 밤을 가로질러 가는 별의 궤적. 떨어진다.

경매로 넘겨받은 새벽이 다발로 풀어진다. 묶여온 밤의 전표에는 아삭한 몽상의 이슬이 묻어있다. 시장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새벽을 맞이한다. 공판장에서 받아온 물품들을 이 새벽이 무너지기 전에 소매상으로 다 돌려야 한다.

오래 전부터 농수산물 공판장을 들락거렸다. 튼실한 과일과 야간작업으로 긴급히 공수된 생물들이 공판장 바닥에 줄지어 선다. 경매사가 흔드는 요령소리에 새벽이 일어서고 손가락 언어로 전달되는 굿판, 삶의 전쟁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새벽 경전을 잘 못 읽으면 빈 수레로 사막 같은 길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것은 농어민들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 생의 수지도를 본다.

누구는 수지도가 물의 길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푸른 수면아래 물골을 형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은 물의 길이라고 했다. 또 누구는 어떤 섬이냐고 물어 보았다. 사나운 파도가 가둔 고립된 섬이라고 했다. 또 누구는 칼이냐고 물어보았다. 허공이라도 휘두르면 싹둑 잘려지는 칼이라고 했다. 수지도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

공판장 벽면에 붙어있는 낡은 지도를 본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가리키는 돈의 향방, 그것이 바로 수지도의 길이다. 경매사와 중도매인의 손길에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삶의 보편적 조건인 고통과 절망, 욕망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누구나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피하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길이다. 주먹구구식 아버지가 걸어간 길. 평행 이동된 그 길을 찾아 우리 모두가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밤, 나는 중력의 족쇄를 풀고 먼 궤도를 돌고 있는 떠돌이별 행성 찾고 있다. 어느 하늘, 외진 병원을 다니는지 몰라도 통증으로 깜박이는 누런 별의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다. 연줄 하나 없을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려본다. 농투성이 삶을 살면서 경작한 농수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오시는 날이면 그날은 영락없이 고기를 먹는 날이다. 또한 수지도의 무서운 칼날의 위용도 느끼는 날이기도 하다. 이 수지도의 칼날은 방향도 없이 베어 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노동을 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살아가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노동이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속박의 굴레로 떨어 질 때, 그때는 비참한 모멸감을 안겨다 준다.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모멸감을 견디게 하는 것은 어쩌면 돈 일지도 모른다. 돈일 것이다. 아버지의 노동이, 내 노동이 무수한 모멸감을 견디고 저녁과 마주한다.

지상의 어느 언덕에서 꽃은 피고 지는가?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푸른 비상구를 뚫고 나와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침묵으로 조정되는 그림자처럼, 내 속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일용할 발자국들이 묵묵히 노동의 바퀴를 굴리며 여기까지 왔다. 오늘을 베어바릴 것 같은 손안에 날도 폐허에서는 조용해진다. 그러나 손에 묻은 흰 수염을 털고 붉은 빛의 희망을 다시 모으고 있다.

옥상의 거미가 고요를 키우듯 아침을 기다린다. 세상은 숨을 곳이 없다. 결전의 장이다. 이곳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어떤 손은 은박지처럼 얇고 어떤 손은 가죽처럼 질겼지만 모두가 따듯한 손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손에서 손으로 길이 나온다. 내 인생의 수지도는 너에게 손을 내밀 때에만 길이 열린다. 12월을 자른다. 나를 자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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