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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오늘의 수필
  • 수정 2019.12.04 10:14
  • 게재 2019.12.04 10:12
  • 호수 449
  • 11면
  • 이현주 아동문학가·시 낭송가(report@gimhaenews.co.kr)
▲ 이현주 아동문학가·시 낭송가

"엄마, 나 오늘 학원 안가면 안 돼?"

아들의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결석은 엄마 사전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말이었다. 2박 3일 수련회에 다녀온 여독도 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어 숙제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마음은 알지만 쉽게 허락하고 싶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각자의 말만 하고 홱 등을 돌려버렸다. 남편의 외출로 간단히 먹겠다고 선택한 짜장 라면이 다 불어터지고 있었다.

돌아보면 내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보다 유독 나만 많이 하는 것 같고, 나한테만 많이 시키는 것 같아 잘하다가도 불쑥 부정의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나한테만 그런 거야? 싫어, 안 해' 하며 뒷짐 지고 밀어버렸다. 아들도 지금 그러하겠지? 영어 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자신에게 무슨 올가미라도 되는 양 느껴져서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연함이 필요한 때인데 스스로 정한 틀을 깰 수 없어 고집만 피우는 엄마의 모습이 자식에게는 원망스럽게 느껴졌겠다. 그 생각에 어미의 마음도 약해졌다. 옥신각신 제 주장들 속에 불어진 라면이 안타까워 영어학원 이야기는 잠깐 미뤄두고 어서 먹자고 했다. 마음 약한 아들은 쭈뼛거리며 진짜 딱 한번만 쉬자고 부탁하듯 말하면서 젓가락을 든다.

사람에게는 그때에 맞는 숙제들이 있다. 피하고 싶지만 찬찬히 풀어내야 하는 실타래처럼 꼭 해내야 하는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해결해가며 '유레카'를 외칠 때가 행복하다는 것은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어른이 되면 숙제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답을 알 수 없는 인생사들이 너무 많아서 어깨가 무겁다. 꼭 해내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양손 가득 들고 발만 동동 구른다. 내가 선택한 즐거운 과제도 있고 나이에 맞게 찾아온 책임들도 있다.

첫 번째 내가 선택한 과제는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품위 있는 인생을 위해 일주일에 한 편의 시를 외우고자 했다.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외울 수 없었던 핑계만 대면서 한 주 한 주 미룬다. 마음은 멀리 유유자적 무릉도원 속에 있는데 눈은 시집의 표지만 읽었다 놓았다 한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나마 이 숙제는 해결 방법이 보인다. 게으름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벼락치기로 완성을 위해 달려야 할 필요는 없다. 일상처럼 시 읽는 것을 즐거이 하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두 번째 인생 숙제는 부모님 공양에 대한 것이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아니, 기꺼이 치러내야 할 책임들인데 참 힘들다. 학원처럼 하루만 빠지면 안 되느냐고 투정이라도 부려서 빠질 수 있다면 좋겠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내 마음의 무게를 이해해줄 사람도 몇 없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누구도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효도를 다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감당해야 할 몫이 많고  벅차서 포기의 손을 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나마 남편과 소통하며 함께 나눌 수 있어 며느리로서, 딸로서의 숙제를 해나가고 있다. 끝이 언제일지 모르니 때로는 원망도 되고 짜증도 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연민과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희생한 세월과 한없이 베푸신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숙제의 마침표를 잘 찍었으면 좋겠다.

"아들아, 오늘 학원 가지마라. 대신 다음부터는 절대 빠지면 안 되기다."

젓가락을 든 아들의 입 꼬리가 길게 올라간다. 손가락으로 걱정마라는 오케이 동그라미를 만들며 불어터진 라면을 맛있게도 먹어준다.

인생이란 숙제의 연속이다. 아들의 숙제는 인생을 배우는 길목에서 더 성장하게 해줄 것이다. 내게 준비된 인생의 숙제들도 삶을 더 향기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숙제들이 더 많으면 힘은 들겠지만 그 숙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또 다른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하나의 반증이리라 싶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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