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희 김해수필협회 회장

TV 켜기가 두렵다. 며칠간에 일어난 흉측한 사건과 사고들을 듣고 보면 다음날 시작하는 하루가 무거워진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저급한 행동, 불안한 경제, 각종 범죄가 난무한 사회는 문제가 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차마 입으로 쏟아 내기조차 무서운 것은 천륜을 저버린 존속 살인이다.

유교 도덕에서 규범화되어 있는 기본 덕목은 삼강오륜이다. 삼강오륜의 기본은 가족이다. 이것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사람의 품성이 변해간다고 해야 할지 인간의 탈을 쓴 소수인의 행동에 말문을 닫게 한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 함께 살아야 하건만 가시 같은 관계가 되면 가정도 사회도 불행해진다.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면서 빚어지는 갈등이 비극을 초래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가시가 되기도 하고 나에게도 가시 같은 사람이 있다. 그것이 가족 관계 내에서 생기면 어느 한쪽에만 치명적이다. 특히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  으로 빚어진 불행은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

나에게도 가시가 있었다. 여학교 시절 바람난 아버지의 상대 여자와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꿈과 행복이란 단어는 사치에 불과했다. 가정이란 말은 나에겐 먼 외국어였다. 한참 꿈을 키워야 할 여학교시절에 나를 찌르는 가시는 틔우기도 전에 내 꿈을 할퀴었다. 자유롭지 못한 환경은 생각마저  무디게 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내가 할 일은 공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복동생 기저귀를 씻게 하고 설거지까지 시켰다. 아버지가 늦게 귀가하거나 안 계시는 날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숙제를 못 하도록 전깃불을 끄거나 때로는 함께 TV를 보게 했다. 사실 그것도 공부 시간을 빼앗기 위한 술책이었다. 성적이 저조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학교 가기가 싫어지면서, 밤마다 절망과 눅눅한 생각들로 입을 다물게 했다. 책가방도 주인을 닮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나도 책가방도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학교에 갔다.

그녀는 늘 나를 감시한다. 사사로운 것 하나하나에 간섭하니 미운 틀이 박힌 나는 눈치만 보며 자랐다. 살아남기 위해 잔꾀만 늘었다. 복수, 분노, 증오라는 낱말들이 적힌 일기장을 그 여자는 훔쳐보고는 아버지께 고자질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아버지는 안 될 인간은 떡잎부터 알 수 있다며 공부시킬 필요 없다는 말을 후렴처럼 쏟아내며 매질을 했다.

가끔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만약 내가 몹쓸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면 나도 TV 속의 저 무서운 아이가 되어 지금쯤 범죄자의 낙인을 얹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여자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한다. 행복하여지고 싶은 애첩 생활인데 본처 딸이 더부살이를 해서니 얼마나 밉고 가시 같은 존재로 보였을까. 

이웃 간에 가시 같은 관계로 맺은 이웃이 있었다.  더러 있다. 어릴 때 뒷집에 사는 낯선 청년이 가끔 보였다. 청년이 보이는 날이면 뒷집 가족이 불안에 떨었다. 청년은 바람 소리마저 잠드는 농촌의 밤을 깨뜨렸다. 술기운을 빌려 고함을 지르며 밥상을 마당으로 던져 그릇 깨지는 소리가 골목을 누볐다. 그때면 뒷집 가족은 우리 집으로 피신을 왔다. 날이 밝으면 마당 한가운데 깨지고 찢어진 집기들이 서글프게 뒹굴고 있었다.

청년은 뒷집 할아버지가 낳은 혼외 자식이었다. 어느 외딴 주막집 과부와 정분을 통해 낳은 아들이었다.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입치레조차 어려워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주소를 들고 큰댁을 찾아왔다. 늙은 큰어머니는 혼자된 형수와 그의 또래 조카들과 살고 있었다. 청년이 나타나기 전 뒷집은 고부간에 남자를 일찍 여윈 박복한 과붓집이지만 어진 품성을 가진 덕분에 평온하게 살았다. 큰어머니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찾아온 이복 아들 방문에 며느리나 손자 보기가 민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감 피붙이인 만큼 성의껏 밥을 먹이고 재워주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청년은 모든 불만을 큰댁에 풀어냈다. 닥친 불행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결국 청년은 알코올 중독으로 불쌍한 생을 마감했다.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아픔이다. '아픔을 떨구지 않고 사는 것도 불행이다. 그 아픔이 모여 분노를 키우고 복수심을 일으켜 범죄를 유발한다. 가족 간에 깊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은 상처를 승화하기보다 본인이 당한 만큼 가해자가 된다. 십 대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가정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슬픔이 문득 밀려오면 감당할 수 없는 울분이 터져 나오기 쉽다.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날은 이불을 뒤집어 씌고 눈물을 밥처럼 삼켰다. 그럴 때면 음악은 내 삶을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긴 강을 건너다 거친 물살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내겐 음악이었다. 음악은 나의 영혼을 맑게 하면서도 서러움을 씻어내기도 했다. 

어른의 잘못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아이들이 아직도 주변에서 발견된다. 나쁜 마음을 키우는 것보다 순한 마음을 갖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천성이 모질지 못해 오히려 지금도 이 땅을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대견스럽다.

지금도 음악을 들으며 주문을 나에게 건다. 가시가 되지 않게 사는 법을 일러 달라고 마음의 기도를 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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