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서울 강남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이세돌과 한돌의 대국. [사진제공=연합뉴스]


국산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한돌'이 이세돌 9단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하며 첫 대국에서 무릎을 꿇었다. 공교롭게도 이세돌이 3년여 전 '알파고'와 대결할 때 '신의 한 수'로 불렸던 78수로 승기를 잡은 것처럼 이번에도 78수가 승부를 갈랐다.

이세돌은 18일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한돌과의 제1국에서 92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객관적인 기력(棋力) 차이로 이세돌이 2점을 먼저 깔고 시작한 이번 대국에서 한돌은 초반 열세를 딛고 공세를 펼쳤으나 상대방의 78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결국 돌을 던졌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다소 허망하게 당한 패배였다.

이창율 NHN 게임AI 개발팀장은 국후소감에서 "솔직히 말해 전혀 예상을 못 한 상황"이라며 "이세돌 9단이 둔 78수를 한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한돌이 이세돌의 78수 이후 실수를 연달아 범했다는 점에서 버그(프로그램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NHN 관계자는 "버그는 아니다. 이세돌이 대처를 잘했다는 것이 개발진의 평가"라며 "이세돌이 '신의 한 수'를 뒀다"고 말했다.

한 AI 바둑 전문가는 "대부분 전문가가 한돌의 우세를 예상했다"면서도 "이세돌의 78수는 프로기사라면 흔히 두는 맥점이지만 세계 최강의 AI 바둑이라는 중국의 '절예'(絶藝)도, 벨기에의 '릴라제로'도 못 본 수"라고 분석했다.

유력한 패인은 그간 호선(맞바둑)만을 둬오던 한돌이 2점을 먼저 깔아주는 이번 대국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돌은 호선에서는 인간이 당해내기 어려운 상대였다. 지금보다 기력이 10% 정도 낮은 2.1 버전 시절이던 올해 1월 신민준 9단·이동훈 9단·김지석 9단·박정환 9단·신진서 9단과 호선을 펼쳐 5연전을 모두 이겼다.

호선이 아닌 먼저 몇 점을 깔아주고 두는 접바둑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두 달여 동안 프로기사들과 연습하며 학습 데이터를 쌓았다. 이에 개발진 내부에서는 3점은 몰라도 2점 접바둑은 어느 정도 기력이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첫 실전 대국에서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쌓지 못한 AI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 팀장은 "머신러닝(기계학습)이라는 게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능력이 올라가는데 이번엔 학습량이 많지 않았다"며 "2점 접바둑을 학습시키면서 프로 기사들과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가 많이 달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세돌 역시 25년 프로 기사 생활에서 접바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열흘 동안 연습한 게 전부라고 한다. 결국 나란히 낯선 상황에서 인간의 임기응변과 유연성이 기계를 앞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 대국이 이세돌의 승리로 끝나면서 2국은 호선으로 치러진다.

이 팀장은 "이미 한돌의 학습은 끝났다"며 "시스템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지 안전성 위주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한돌은 NHN이 2017년 12월 선보인 바둑 AI다. 올해 8월 첫 출전한 세계 AI 바둑대회 '2019 중신증권배 세계 AI 바둑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기력 측정에 쓰이는 'Elo 레이팅' 기준으로 한돌은 4500을 넘기며 인간 9단 평균치(3500)와 알파고(3700)는 물론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알파고 제로'보다도 우위인 것으로 평가된다. 

김해뉴스 디지털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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