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연경(지금의 중국 베이징)을 가던 중 압록강 국경 넘어 사는 한족 출신 청나라 지식인 강영태를 만났다. 연암은 강영태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공부 방법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눴다. 강영태는 연암에게 책력(冊曆) 한 벌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강영태가 사는 곳은 청나라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책력을 구하기 힘든 곳이었다. 당시는 해가 바뀔 무렵 책력을 구해야만 자신의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강영태가 절실하게 연암에게 책력을 부탁한 이유다.
 
연암은 강영태에게 청심환 한 알을 주면서 이별의 인사를 대신했다. 만병통치약이었던 청심환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당당하게 새로운 사람과 문물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마법의 약이었다.
 
<선물의 문화사>는 임금부터 사대부, 민초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하고 인간사를 풍요롭게 이끈 19가지 선물을 담았다. 달력, 단오부채, 지팡이, 분재기, 버드나무, 매화, 종이, 앵무배, 도검, 벼루, 청심환 등이다. 이 물건은 대부분 경제적 틈새를 메우는 것임은 물론, 그 시대의 '핫 아이템'이었다.
 
선물은 문화권이나 시대, 그것을 주고받는 맥락 등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앵무배를 하사했을 때는 이 술잔에 술을 마시면서 한껏 즐기라는 풍류 넘치는 당부가 들어 있다.
 
선비가 매화 가지를 선물로 보냈을 때는 매화가 가지는 절의, 고결함 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선물로 들여다보는 사람살이, 시대상이 흥미롭다.
 
부산일보=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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