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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시론
  • 수정 2019.12.31 14:14
  • 게재 2019.12.31 14:12
  • 호수 453
  • 11면
  • 진혜정 시조시인(report@gimhaenews.co.kr)
▲ 진혜정 시조시인.

어떤 일을 추진할 때나 주변의 인물을 평할 때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분석을 해서 결론을 내릴 때가 있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가 확실하다고 느끼고 경험이 뒷받침되면 나만의 틀에 갇혀서 나와 다른 결론을 내리고 딴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드니 '안방에 가면 시어미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양면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옳다고 여겼던 일도 며칠 지나고 보면 다른 측면이 보이고 다른 잣대와 다른 시선이 존재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어떤 일이라도 쉽게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며칠 전 TV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를 보았다. 50대인데도 해맑은 표정과 특유의 몸짓으로 노래를 하는데 부르는 사람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감동적인 무대였다. 1991년에 '리베카'로 데뷔하여 활약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양준일이라는 사람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양준일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스타일의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에 영어 노랫말을 많이 쓰고 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최근에야 유튜브 등에서 '탑골' 시리즈가 유행하면서 빅뱅의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로 '탑골지디'로 불리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방송은 한때 스타로 활약하다가 소식이 뜸한 가수들을 다시 소환해 그의 근황과 노래를 들어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의 한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면서 겨우 월세를 낼 정도로 살고 있다는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들어올 때 10년짜리 비자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6개월마다 확인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출입국관리소에 근무하던 한 직원이 '나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내가 이 도장은 절대 안 찍어줘'라며 도장 찍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후 부산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올라가려는 순간 출입국관리소에서 사람이 나와서 네가 지금 이 무대에 서면 다시는 대한민국에 못 들어온다고 말해 콘서트를 취소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한국말이 서툰 데다 낯선 장르를 구사했던 그를 한국 사회는 이방인으로 취급했고 아무도 그를 위해서 작사를 해 주거나 곡을 주지 않았으며 공연 도중 돌과 신발이 날아들었던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말하는 표정이 정말 맑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때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양준일을 양아치로 생각했을 것이다. 단순한 편견이나 오해라고 하기에는 그가 한 행동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몇십 년 앗아간 기막힌 일이 돼 버렸다.

혼돈은 어느 시대나 누구의 마음에나 존재한다. 1913년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봄의 제전'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도 극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은 원시주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이교도들이 봄의 도래를 축원하며 태양신에게 젊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중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음악과 무용에 충격을 받고 당장 집어치우라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의 사후, 그의 음악은 대부분 잊혔으나 1960년대에 극적으로 부활하여 이제는 콘서트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연주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슈베르트의 멋진 피아노 소나타들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고 콘서트에서 연주하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라고 하니 음악이든 문학이든 대중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네 인생사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어떤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해도 수많은 편견과 비판에 부딪혀 정당한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오죽하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폴란드의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의 말에 용기를 얻어야 했을까. '원천(原泉)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라는 헤르베르트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나 참신한 시도는 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일이 비판을 받을 때 그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꿋꿋이 딛고 일어나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일은 더 힘들다. 그러나 시련을 딛고 일어선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은 참으로 선하고 빛났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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