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술'과 줄다리기

'영차, 영차' 구령에 맞춘 시끄러운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축구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팀을 위해 투혼하는 모습이 내 발길을 잡는다.

줄다리기는 대개 커다란 운동장이나 동네 널찍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선수와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동적인 경기의 진수를 자아낸다.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 같은 편 사람들은 사력을 다하여 힘을 보탠다. 개인은 완전히 내려놓고 집단을 위해 온전히 사투하는 모습이다.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양 팀의 응원단장은 자신이 직접 줄다리기를 하는 양, 온몸을 기울이며 목에 핏대가 서도록 '영차'를 외친다. 몸을 사리지 않고 줄을 당기는 사람들이 오랜 지인처럼 느껴진다. 대동단결의 의미로서 하던 줄다리기는 요즘 우리 사회에 공동체 삶의 풍속으로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줄다리기는 같은 편의 사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사고기능은 접어두고 단순히 힘만을 쏟는 행위다. 줄다리기만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체가 되는 게임은 많지 않으리라. 맨 앞에서 팀원 중에 가장 힘이 세고 잘하는 사람을 세운다. 그러기에 앞에 선 사람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맨 앞에서 발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에 버팀목을 단단히 박고 사력을 다하여 땅을 지킨다. 꽁무니에 있는 사람도 힘은 약하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드러누우면서까지 팀을 위해 오체투지한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우리들 내면에 원래 있었으리라.

줄다리기는 보는 사람들도 한마음이 되어 응원을 한다. 왼쪽으로 끌려가면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힘을 보태고,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몸도 뒤로 넘어가며 힘을 보태게 된다. 무념무상의 경기를 보며 잡다한 생각과 스트레스를 날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며 이긴 팀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줄다리기는 아무런 장비 없이 줄 하나만 있으면 최고 흥분과 통쾌함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경기다. 사람과 사람의 몸이 하나의 줄로 이어지고 이어진다. 이는 상대편의 사람에게도 촘촘히 이어진다. 계략이나 용병술 없이 몸만을 사용하는 인간적이고 신사적인 놀이가 아닐까.

요즘은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일부 사람들만 하던 골프는 줄다리기와 대조된다. 골프는 한 개인이 18홀까지 자신이 친 공을 찾아다니며 마지막 홀인까지 외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홀로 하는 릴레이는 흥미가 없다. 골프에선 지독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냄새가 난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 보기,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이 연상된다.

요즘은 혼자 살기가 주목받고 있다. 각박한 경제상황 속에서 살아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현대인들의 비애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의 표출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삶의 트렌드가 삶의 영역을 축소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술'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의 대명사처럼 쓰여 왔다. 술을 못 마시면 인간관계를 할 수 없다는 극단적 말까지 나올 정도로 술은 '함께'라는 의미가 크게 어필된다. 술까지도 혼자 해야 하는 이 세상이 조금은 서럽다.

삶이 고독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 사람들을 불러 모아 줄줄이 달라붙어 줄다리기 한판 붙어보면 어떨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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