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주의·확고함 등 12개 주제
나폴레옹·바흐·셰익스피어 등
역사적 인물과 함께 집중 조명



<베토벤>은 12개 주제별로 3명씩, 총 36명의 창을 통해 베토벤을 조명한 책이다. 12개 주제는 거인주의, 확고함, 자연, 환상성, 초월, 유토피아, 베토벤의 그림자 등이고, 36명의 창은 나폴레옹, 바흐, 셰익스피어, 루소, 슈베르트, 슈만, 헤겔, 횔덜린, 로맹 롤랑, 토마스 만, 아도르노 등이다. 베토벤 수용의 다양한 관계망을 탐색하면서 베토벤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베토벤은 위대하다. 슈베르트는 "베토벤 다음에 누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정도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만 봐도 전 32곡은 피아노 음악의 신약 성서로 자리매김 돼 있다. 신화로 자리 잡은 열정, 월광, 비창, 폭풍, 함머클라비어 등은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들을 때 더 새로워진다. 가령 함머클라비어는 우리의 몸을 때리고, 심장을 때린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슈만은 "내 자존심이 이 소나타로 얼마나 무너졌던지"라고 탄식했다. 후기 피아노 소나타 5곡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도전과 수용, 나아가 새로운 시대 예견까지 담은 아름다운 곡이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축의 시대'라고 하여 이미 2500년 전에 주역, 논어, 노장, 불교, 기독교, 플라톤,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인류의 핵심적인 사상과 종교, 철학은 거의 다 등장했다. 그런데 왜 베토벤은 18~19세기에 인류 혹은 서양의 보편 음악으로 등장했나.
 
책의 해석은 흥미롭다.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적 질서는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이후 인류는 신을 대신하는 새로운 복안을 찾기 시작했다. 베토벤이 그것을 음악을 통해 그려냈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에 담긴 것은 자유와 진보, 요컨대 '새로운 인간'이었다. 새롭게 발견된 인간,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음악으로 그려낸 것이 베토벤이었다. 책은 "5번 교향곡 '운명'의 4악장은 프랑스 혁명 승리의 빛 같다"라고 쓰고 있다.
 
20세기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연주한 베토벤은 전율, 영웅주의, 독일 내면의 정신적 힘으로 듣는 사람을 사로잡아버린다. 합창, 에로이카 등의 연주는 웅혼하며 무섭기조차 하다. 그 점을 나치가 이용하기도 했던 거다. 그러니까 베토벤 음악 속에는 근대 이후 역사가 빚어낸 모든 빛과 그림자가 다 녹아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베토벤은 웅숭깊다. 베토벤의 자기 연민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자신을 헤라클레스, 소크라테스, 그리스도 등 신화와 세계사의 고통 받았던 뭇 영웅들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특히 가장 불행한 인간의 하나인 오디세우스를 제일로 많이 닮았다 여겼다고 한다. 베토벤은 결국 '고향'에 이른 오디세우스처럼 본향에 이르렀던 것일까.
 
독일 도르트문트대학의 음악학 교수인 저자는 말한다. "베토벤은 누구나 자신의 몫을 다하면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근대의 약속을 타협없이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약속을 자신의 작품에서 참으로 고통스럽게 견지했다." 베토벤은 후기 현악 4중주곡에서처럼 자기 소외 과정을 드러내면서도 그 모든 것에 체념하지 않고 싸워서 얻어내야 할 인간의 행복을 끝까지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 곡들을 통해 베토벤은 1세기를 훨씬 앞서서 이미 "현대인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베토벤의 위대성이다.
 
로맹 롤랑은 불굴의 베토벤을 통해 19세기 말, 20세기 초 시대의 우울을 넘어서려 했다. 롤랑의 장편소설 <장 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을 모델 삼아 유럽의 우울을 강력한 삶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이 소설의 전망, 베토벤이 보여주는 전망은 다음 물음과 답 속에 깃들어 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나는 다가올 내일이야."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베토벤을 새롭게 들어볼 호기다. 

부산뉴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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