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전마을 입구에 위치한 용전숲. 오래된 나무가 많아 여름이 되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잎이 무성하고, 숲 사이로는 물이 흘러 경치가 좋다.  김병찬 기자 kbc@

용전폭포에서 쏟아져내려 도랑으로 흐르는 물 그대로 마셔
당산나무 3그루 일일이 제사 지내 용전숲은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광
피서객들에 시달려 "보호합시다"

산 아래에 펼쳐진 첫 마을. 지금은 김해지역 어딜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장들이 감히 들어서지 못하는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는 마을. 바로 진례면 산본리에 위치한 용전(龍田)마을이다.
 
마을 주민들 간에 빈부격차도 없고, 의견 차이도 없어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용전마을. 마을은 큰 산들에 둘러싸여 조용하고도 차분했고, 한쪽 편에 병풍처럼 늘어선 대나무 숲도 한껏 운치있게 느껴진다.
 
"저기 저 높은 산 보이지요? 저기가 바로 용지봉(龍池峰)입니다. 우리 마을은 용지봉에서 내려오는 물을 제일 먼저 마시는 곳입니다."
 
▲ 용전마을 전경. 마을 옆을 흐르는 용전천을 경계로 산본리와 신월리로 나뉘어진다.
마을 주민들이 엎드려서 도랑물을 바로 마셨을 정도라고 하니, 그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용지봉은 용이 승천한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중턱에 있는 용전폭포는 용이 승천한 장소라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저 산 꼭대기에 나무하러 자주 올라가곤 했었죠. 산이 꽤 높아서 진해 앞바다까지 잘 보인다오." 마을회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어르신들이 용지봉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저 산은 묘를 써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마을에 가뭄이 들기 때문이죠. 옛날부터 저 산에 묘를 쓰면 그 묘를 쓴 집에만 물이 나온다고 했어요. 비가 안 내리고 가뭄이 심해지면 산에 올라가서 누가 묘를 쓰지는 않았나 샅샅이 뒤져보고, 보이면 전부 파냈었죠. 그러면 마을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김말태(83) 할아버지가 말했다.
 
▲ 마을회관 옆에 우뚝 서 있는 당산나무.
마을에는 총 3개의 당산나무가 있다. 300년이 훌쩍 넘은 나무가 한 마을에 3개씩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용전마을에서는 아직도 섣달 그믐날이 되면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야 마을이 평화롭고 주민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용전마을에는 마을 주민들이 애착을 갖고 있는 멋진 숲이 있다. 하늘을 향해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팔을 뻗고 있는 용전숲이다.
 
용전마을은 고려시대 때부터 중요한 교통기관으로 활용돼 온 역들 중에서 생법역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때도 공공물자와 공문서는 역로를 통해 역마로 운송했다고 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때 용전마을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는 생법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용전마을 양종욱(48) 이장은 "용전숲은 역에 들르는 사람들이 말을 매어두고 쉬어가던 곳이었다"며 "잎이 하늘을 덮을 만큼 나무들이 크고, 숲 중간에 물이 흐르는 곳이 있어 여름에는 정말 시원하고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용전숲을 오랫동안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재산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을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걱정거리가 생겼다. 여름철에 부쩍 늘어난 피서객들과 시도 때도 없이 버려져 있는 쓰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에요. 마을이 오염될까봐 걱정이죠. 우리 마을의 아름다움을 지켜야 되는데…." 양 이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죽어가는 용전숲의 나무들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무는 키우고 지키는 건 어려워도 죽이는 건 10년이면 되더군요. 3개월에 걸쳐 약 1억5천만 원을 들여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안좋아졌어요."
 
▲ 용전마을에 남아있는 정겨운 돌담길.
뿐만 아니다. 용전숲과 용전천 사이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주민들은 김해시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워낙 주변환경이 좋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그럴수록 원래 모습 그대로의 마을을 지켜내기가 힘듭니다. 모두가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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