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하나가 세상을 움직이는 건 아니다. 또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을 낸 작가 권여선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8편의 작품을 읽어보니 '모르겠다'는 말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뭔가로 채워져 있다는 것 같다. 모르는데도 희한하게 아주 엷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삶일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직 멀었다는 말'이라는 소설집 이름도 '온전히 채워질 수 없는' 우리 삶의 전모에 대한 암시 같다.

8편에서 느껴지는 것은 글의 품격과 깊이다. 묘한 여운을 주는 글들이다.

시대의 팍팍한 삶에 육박하기도 하고, 한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의 의미를 얼핏 드러내기도 하고, 문학
고전을 좇아가는 수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작품 '전갱이의 맛'은 말에 대해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말을 계속 해대면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250쪽)며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249쪽)고 작가는 쓰고 있다.

한자 구절을 빌리면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깨지니 산하가 있음을 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말이 깨지니 그 말 너머에서 말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말 너머의 말, 삶 너머의 그것, 모르겠다고 할 때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닌 그것에 대해 격조 있게,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깊은 모름 가파른 모름 두터운 모름까지 못 가고 어설픈 모름 속에서 내 앙상한 모름의 뼈가 드러날 때까지 그때까지만 쓸 것인가. 모르겠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