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정 시인·수필가

내 어릴 적, 수의 개념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덧셈과 뺄셈이었다. 더하기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빼기는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수학을 싫어했고, 덧셈보다는 뺄셈이 더 어려웠다. 그래도 학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수학이라 열심히 했고, 어머니의 가정 학습 덕분에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은 다시 어려워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현대는 셈에 밝고 덧셈과 뺄셈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그 방면에 밝지 못해서 이렇게 주변인으로만 살고 있는 신세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덧셈이 무조건 좋은 거라고 믿었던 어릴 적의 사고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크면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재산의 플러스나, 지식의 플러스, 또는 유익한 경험의 플러스 등은 좋은 일이지만, 슬픈 일이나 역경의 덧셈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일에는 덧셈이, 불행한 일에는 뺄셈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덧셈만 있다면 사는 일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생각난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로써 그들 재산 나눔의 마이너스가 혜택 받는 사람들에겐 플러스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셈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균형 있고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고 내 나이에도 플러스가 생겼다. 만인 공통으로 더해지는 덧셈, 하루하루 한 달, 일 년을 내가 소비했으니 불만은 없지만 황혼 인생에서 나이가 더해진다는 것은 어떤 비애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다.

동짓날 팥죽의 새알을 먹으면서 생각하고, 양력 초하루 일출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마음이 있었다. 음력 설, 명절 행사를 치르고 나서야 오차 없이 무겁게 내려앉은 나이의 숫자를 인식한다.

내가 일 년을 사용할 그 숫자가 아직은 서툴고 누가 물으면 작년의 나이를 잘못 말하게 되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짐하듯이 그 숫자를 머릿속에 다져 넣는다. 울며 겨자 먹기란 말이 생각난다. 노년의 삶에 겨자보다 더 쓴 것이 보태어진 나이가 아닐까 싶다.

플러스는 마이너스를 가져온다. 나이가 보태어질수록 내 삶의 시간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삶의 시간만이 아니다. 열정이 줄어들고 감성은 메말라 가고 신체는 퇴보된다. 꿈이란 글자는 이제 생소하기만 하다. 해마다 정초면 더 잘 살아보자고 다짐하건만 연말이면 늘 아쉬운 맘이 들곤 한다. 서툴기만 한 내 인생의 셈법을 생각하며 절망하지만, 다시 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 앞에 또 희망을 걸어본다. 빳빳하게 폼을 잡고 걸려있는 새 달력의 숫자에 눈도장을 찍으며 가속도가 붙은 세월과 한판 대결을 벌여 보자는 것이다.

메마른 감성에 촉촉함을 더해줄 무언가를 찾아서, 사라져 가는 열정을 붙잡아 줄 버팀목을 찾아서 빠르게 달려가는 삶의 시간을 늦추는 법을 찾아봐야겠다. 그리하여 플러스가 가져온 마이너스의 수치를 좀 줄여보는 노력을 해 보아야겠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또 하루해가 저물었다.

나의 새해 소망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 여기에 꼭꼭 새겨 넣는다. 열심히 책을 읽자. 열심히 글을 쓰자. 열심히 운동 하자. 그리고 덧셈도 뺄셈도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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