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절, 매 순간마다 기쁨과 슬픔을 같이한 고마운 책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올해들어 접한 아지즈 네신의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아지즈 네신(1915~1995)은 터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풍자문학의 거장으로, 터키의 대표 지성이자 터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도 문학성을 인정받아 이탈리아와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수여하는 황금종려상·황금고슴도치상과 같은 풍자 문학상을 두루 수상하였다. 그는 250번 이상의 재판을 받았고 유배와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평생 기득권 세력과 투쟁했고, 정권의 탄압, 특히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네신 재단'을 설립했으며, 사망 후 유언에 따라 작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
 
네신의 작품을 읽다 보면 웃음 뒤에 숨겨진 풍자를 만난다.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숨어 있어,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뜨끔하고, 뭔가 곰곰히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는 풍자적인 내용의 작품이 아니라 잔잔한 감동에 젖게 하는 작품이다. 못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불쌍하다, 그 중에서 가장 불쌍한 것이 어린이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가 겪은 일을 써놓은 이 책 속에는 우리 부모님과 나와 형제들이 있고 내 친구가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나 가난했느냔 말이다.
 
책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네신의 여동생이 걷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약은 고사하고 먹을거리만 많았어도 건강했을 거라고 한다. 부모는 이웃의 권유에 따라 아이를 묘지로 데리고 가서 비석 밑에 놓아 둔 채 '뒤돌아보지도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결국 아이를 먹여 살릴 수도, 의사를 부를 수도, 약을 먹일 수도 없는 가난한 부모는 오로지 신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자존심을 가르치는 어린 아지즈 네신의 부모에게서는 깊은 연민과 감동이 느껴졌다. 부모를 과장되게 포장하거나 훌륭하다고 강조하진 않았으나, 작가가 불의에 맞서 투쟁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평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작품의 곳곳에 들어 있다.
 
물론 가난한 나라에도 부자는 있다. 같은 나라 국민인데도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더 동정심이 없는 부자 말이다. 비단옷과 깨끗한 신발을 신었던 부잣집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아지즈 네신보다 더 존경받는 삶을 살지는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아지즈 네신은 이 글을 쓴 이유를 작품의 끝에 이렇게 밝혀 두었다. "많은 부모들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읽으며 자신들의 추억을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우리가 겪은 것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독한 가난과 슬픔을 겪은 작가가 올바르고 정직하게 자라 터키의 자랑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린이가 나라의 보배라는 말은 입에 발린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자명한 진실이다. 미약하나마 어린이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욱 넘치는 사랑으로 어린 눈망울들을 만나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시낭송가 김미정은 >>
1968년 창녕 출신으로 사)김해색동어머니회 2대 회장을 역임한 뒤 고문을 맡고 있다. 시낭송가, 동화구연가, 독서지도사이며 김해도서관과 시립도서관 강사로 활동 중이다. 김해YWCA 이사, YWCA여성인력센터강사, 교과부 지혜나눔강사를 맡아 김해의 어린이와 여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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