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홍 전 김해교육장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대륙의 관문이기에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가려는 세력과 북방에서 남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북방의 종족들에게서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다. 나라가 극한의 위기에 처했을 때 민관이 똘똘 뭉쳐 그 위기를 극복해 냈지만 내부의 분열과 외세를 끌어들인 세력에 의해 나라가 망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특성은 이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이다. '정이 많다' '신바람이 있다' '열정적이다' '급하다' '겁이 없다' 등의 지적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19세기에 조선을 찾아온 외국인들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고 표현했지만 서양 선교사들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조선인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게으르게까지 보이지만 실제로는 활달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역동적인 사람들이라고 쓰여 있다. 일본에서는 몇 년씩 걸렸던 성냥 보급이 조선 팔도에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역동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도 감독과 선수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합심해 참여하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면서 이룩한 성과다. 이때의 거리 응원 모습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때 전 세계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재평가하고 한국인의 기질과 저력에 갈채를 보냈다. 우리국민들의 도전정신과 열정 덕분에 2차 대전 이후 현대사의 기적이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할 수 있었다. 음주가무를 즐긴 덕분에 시간낭비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한류를 만들어 냈다. 외국 유명 가수들이 우리나라에 공연하러 왔다가 수천, 수만 명의 청중이 다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떼창'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국민은 예전부터 위기에 직면하면 일치단결해 극복했다. 당 태종이 안시성을 공략할 때 성내 고구려군과 성민들은 결사적 저항을 벌인 결과 당 태종의 정예 대군을 물리쳤고, 행주대첩 때에는 관군의 화살이 다해 투석전을 벌일 때는 부녀자들까지 동원되어 관민이 일치단결해 싸웠다. 이때 부녀자들은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다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기에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나라의 빚을 갚아 일제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주축도 일반 국민이었고,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국가의 부채를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금 227톤을 모아 세계를 놀라게 한 것도, 2007년 12월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건에는 2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찌꺼기를 일일이 닦고 걷어내어 해양생태환경을 완전 복구한 것도 우리나라 국민들 속에 숨어있는 '위기극복 DNA' 덕분이었다.
 
코로나19의 충격적인 확산 속에서 세계인이 고통 받고 있다.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국가의료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몰렸고, 스페인 정부는 군병력까지 대거 투입하면서 국경통제와 상점 폐쇄 등의 강력한 조치를 단행했지만 코로나19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국민이 대구에서 보여준 서로 돕는 정신과 자발적 임대료 인하운동에 동참한 건물주들, 코로나 치료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현수막, 승차 검진 아이디어 등에서 위기 때마다 우리민족 고유의 '위기 극복 DNA'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안보, 경제, 정치 모든 부문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정세와 주변국 상황도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땅 위에는 같은 DNA를 가진 한국인이 살고 있기에, 힘을 모아 이 위기를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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