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혜정 시조시인

가난한 농장에서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소녀가 있었다. 가난 때문에 그녀는 12세 때부터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해야 했다. 14세 이후로는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결혼해서는 남편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중 5명의 아이를 유아기 때 잃었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자수였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후로는 자수를 하면서 위로를 얻었다. 그러나 그런 자수를 70대부터는 할 수가 없었다. 관절염이 심해져 바늘에 실을 넣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의사들은 앞으로 그녀가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찾아 간 6명의 의사들은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심하게 구부러져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할 것이라 했지만 마지막으로 찾아간 일곱 번째 의사는 그녀가 조금씩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에 취미를 붙여볼 것을 권했다. 

누군가는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때, 그녀는 그림을 시작했다. 자잘한 일상에 대한 사랑과 가쁨이 넘쳐나는 그림들이었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담은 그녀의 그림은 서툴렀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품 수집가의 눈에 띄었고, 그녀의 나이 80세에 생애 첫 전시회가 열렸다. 정겨운 그림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그녀는 101세의 나이로 16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려냈다. 그녀의 그림은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이나 우표, 카드에 사용돼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이브 아트(naive art)의 세계적인 거장 그랜드마 모제스(Grandma Moses)의 이야기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질박한 손으로 빚어낸 그녀의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상실감에 처한 미국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내는 응원의 노래가 되었고, 일상의 소소함이 가득한 그림들은 행복했던 추억을 소환시키는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시대를 훌쩍 넘어 우리나라에도 위로가 가득한 노래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을 친근한 멜로디와 쉬운 노랫말로 녹여낸 트로트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모 방송국의 경연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트로트열풍은 출연자들의 어려웠던 시절 사연과 무대를 향한 간절함, 노래에 대한 진정성 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30대부터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향한 고마움을 애절하게 노래한 임영웅,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와 마시던 막걸리를 다시 마실 수 없어 그 시절의 그리움을 노래한 영탁, 청소년 시절 나쁜 길로 가던 자신을 음악의 길로 이끌어 준 스승을 생각하며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노래한 김호중, 부모님께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많던 대구에 계셔서 전화로 후원을 받으며 노래한 이찬원,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신을 길러 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할아버지께 바치는 노래를 부른 정동원, 아이돌 1세대로 데뷔한 이래 21년의 힘든 무명생활을 견디며 아버지께 성공한 모습을 못 보인 안타까움에 애절하게 노래한 장민호 등 경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진심을 담아 부른 노래는 전 국민을 감동시키며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를 잠시 잊게 했다. 

경연 프로그램이라 진선미를 뽑는 문자 투표를 할 때 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른 임영웅을 응원했다. 신혼 시절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사람이 황혼이 되어 먼 길을 떠나려하는 그 먹먹한 사연의 가사를 담담하게 노래하는 목소리에 반해서다. 노래 중간에 휘파람을 어찌나 애절하게 부는 지 정말 딸아이 졸업식, 결혼식이 떠올려져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부터 임영웅이 부르는 트로트는 지루하고 우울한 하루를 견디는 내 일상의 위로가 되었다. 결승전에서 임영웅이 5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배신자'를 애절하게 부를 때 나는 이 힘든 시기에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여러 사람들의 고마움에 전율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연 과정을 함께 하면서 지금 이 트로트 열풍은 단순히 어느 가수의 노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움을 겪고 난 뒤 우뚝 선 사람의 모습, 어려운 삶 속에서도 꽃피는 우정, 무명과 가난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등이 지금의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아름답게 다가온 것이리라.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의 이 어려움을 이겨냄으로써 어려움을 이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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