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명호 수필가

어머니! 요즘 들어 부쩍 오랜 지난 먼 추억 속의 꿈을 자주 꾸게 됩니다. 세월의 나이 잊어버렸는지 육순의 나이는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오늘 찬 공기 사이 잔뜩 찌푸린 밤하늘을 바라다봅니다. 잔뜩 흐려져 흘러가는 구름 속에 세월의 나이도 같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답니다. 지난 밤 내내 삭신이 쑤셔오니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내 신체가 일기예보 전조인지 기상대는 나이 따라 오는가 봅니다.

바보상자 화면에는 반복된 전염병 뉴스만 중계 방송하듯 전해져 오고 애꿎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대다 꺼버리고 아예 라디오 볼륨을 올렸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은둔 속 하루가 일상이 돼버린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유리창문을 타고 내리는 빗물줄기는 차창 밖 골이 팬 기와지붕 추녀 끝에 모여 낙수가 되어 추적이며 이른 봄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네요.

오랜 직장 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하고서 그동안 꿈을 이루어 가고 있어 그나마 지난겨울은 그렇게 포근하게 지나갔습니다. 삼개월여 공사기간을 거쳐 따뜻한 야산 아래 골짜기에 무난하니 노후에 정착할 자그마한 삶의 터전이 만들어졌습니다.

평온하던 우리네 삶이 바뀌었다는 것은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십자가 마크만 보아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건 작금의 시대 상황이 투영된 탓입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 일원의 일탈 행위로 인해 온 세상은 몹쓸 사탄의 전염병으로 포교가 됐습니다. 급기야 마음대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본의 아니게 이로 인한 마음과 육신의 막대한 피해를 입은지라 이는 진한 속상함으로 전해져옵니다.

구순이 훌쩍 넘은 늙은 엄마를 현대판 고려장 병원에 홀로 두고 마음이 울적합니다. 이렇게 봄비가 오는 이른 아침 그래도 엄마가 보고파서 병원을 찾았건만 병원 담당자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이유로 들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의 호소에 떠밀리다시피 힘없이 병원 현관문 닫아두고 다시 돌아 나옵니다. 백수를 목전에 두고서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인데 하나밖에 없는 지 부모도 건사 못해 요양병원에 팽개치다시피 하는 죄인 아닌 불효죄인으로 살아갑니다.

타임머신 속의 어느 해인가. 늘어진 하품 속에 긴긴 늦은 봄 이맘때, 소나무 골짜기에 삐뚤어진 기다란 골이 팬 밭고랑에는 박하와 시호, 갖가지 한약재 묘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봄꽃들을 시샘하듯 제각기 황홀하게 만발한 예쁜 도라지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낯선 야산에는 진보라색, 백색, 그리고 핑크빛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죠. 아버님 당신은 세월의 경륜 더하여 두툼하니 부풀어진 손마디로 해를 넘긴 새순이 돋아나는 칡 줄기를 끊어다가 껍질 벗겨 기막힌 천연의 훌륭한 포장 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지천에 널린 이름 모를 꽃들을 꺾어 한 아름 보태 칡 줄기로 묶었습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만드신 한 아름 봄의 선물을 당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께 슬며시 건네주셨습니다.

나른하니 이른 봄기운이 완연하여 홀로 허망하게 돌아오는 버스에 기대어 덜컹대며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정차 음에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졸린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한적하니 울 동리 초입 정류장에 닿은 버스는 저를 팽개치다시피 하고는 그렇게 지나가 버립니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