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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포효하는 삶의 고락책(BOOK)
  • 수정 2020.04.14 12:59
  • 게재 2020.04.14 12:58
  • 호수 467
  • 6면
  •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theos@busan.com)

소리의 이치·정신 체계화하여 밝혀
우리말 초·중·종성 판소리 발성 원리
겨레 호흡결·정서이자 민족 철학 담아
광대 득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



광대(廣大)는 위대한 이름이다. 넓을 '광(廣)'에 큰 '대(大)', 천하의 부조리·부정에 대한 일갈을 예술에 담아서 천지에 포효하던 무리다. 천지에 포효하는 소리는 바람(風)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광대는 끝 간 데 없는 인간의 고락을 설워하며 우는 존재다. 그런 게 광대의 이름으로 우리 판소리가 품고 있는 예술 정신이다.
 
<득음>은 우리 소리의 이치와 정신을 체계화하여 밝히고 있는 책이다. 소리꾼 배일동(55)이 썼다. 그는 순천 출생으로 집안이 가난해 20대 때 유조선 기관사로 배를 6년여 탔으나, 몸에 새겨진 설움의 그 가락을 못 잊어 26세부터 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간문화재 두 스승에게서 소리를 사사한 뒤 그는 7년간 산에 들어가 폭포를 마주하고 홀로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우선 저자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들어 있는 우리말의 3성(초성 중성 종성) 원리를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말 3성 원리는 바로 판소리 발성의 원리요, 시김새의 모양이요, 성음놀이의 이치이자 우리 겨레의 오랜 호흡결이고 정서이며 민족의 철학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코드다."(205쪽)
 
3성 원리는 모음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해 희한하다. '저기'를 말할 때 가까운 곳은 '저기'이지만 먼 곳은 '저어~기'로 길어지는 것이다. 또 '전전반측'을 소리로 토할 때 '저어~언전반측'으로 늘어뜨려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긴 밤의 애타는 정서를 그대로 담는다는 것이다. 이런 말법이 우리의 글과 사유방식, 정서로 이어지고, 나아가 춤이나 악기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놀랍다. 우리 가야금이 일본 가야금 고토와 달리 깊은 농현법을 구사하는 것, 소리를 밀고 당길 뿐 아니라 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의 3박 율동 때문이란다.
 
저자는 득음하기 위해서는 20년은 소요된다고 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판소리가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는 통성(通聲)이다. 통성은 온몸을 울려서 통목으로 나오는 소리다. 몰아의 감정으로 가슴에 사무치는 감동을 주는 것이 통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氣) 호흡 장단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소리의 이치'를 터득해야 한다. 상하 단전을 통하는 내공이 있어야 통성이 나온다고 한다. 저자는 "판소리계 통성의 최고는 송만갑이었다"고 한다. 송만갑의 소리는 큰 대문의 쇠 문고리를 흔들었으며, 바람 한 점 들어갈 구멍도 없이 그 기세가 단단하고 여물었다고 한다.
 
판소리에는 선조들이 인생을 살면서 자연을 통해서 깨달은 이치가 깊이 함축된 용어들이 많다. 한국의 삶과 자연이 들어 있는 것이다. '소리는 한 배가 꽉 차야 한다'는 것은 소리의 뜻과 맛이 완연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덧음(더늠)'은 자신만의 독특한 발성법을 일컫는데 그것은 결국 소리꾼의 최고 가치라고 한다. '시김새'는 소리의 뜻(음)과 맛(운)이 서로 상응하여 조율된 모양새인데 옛 명창의 그것은 진솔하고 소박하여 그 그늘이 깊고 무거웠다면 지금의 시김새는 다소 수식적이어서 그 그늘이 얕고 가벼워졌다고 한다. 또 '제(制)'를 시조의 개념으로 본다면 '바디'는 제에서 뻗어나온 가가(家家)의 족보라고 한다.
 
판소리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말한, 공자의 문질빈빈(文質彬彬) 경지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여기서 섬진강을 경계로 한 동편제와 서편제 얘기가 나온다. 동편제가 가사 이면의 뜻과 정(情), 즉 질(質)을 중시한다면 서편제는 소리의 기교와 수식 등 전체적인 시김새, 즉 문(文)을 중시한다. 둘은 소리의 날줄과 씨줄이고, 또한 소리의 바탕과 꾸밈이며, 소리의 골(骨)과 육(肉)이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술의 궁극은 둘의 조화다. 얼치기 타협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득음의 고독하고 높은 길이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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