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시인

선택의 시간도 끝나고 이제 다시 거리두기 시작이다. 그렇지만 흐드러진 꽃밭으로 가서 동무들과 꽃밥 한 그릇 먹고 싶다. "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 피어 있네" 김소월의 산유화부분이다. 이번 봄은 저만치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환난이 닥치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서로의 지혜를 모아 헤쳐 나갔다. 예로부터 두레와 품앗이 등이 서로 돕고 사는 우리 민족의 고유 품성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올해 꽃은 유달리 하얗고 노랗게 피었지만 저 혼자 처연하게 봄을 가로질러 간다.
 
이런 날들이 언제 있었던가? 꽃은 한꺼번에 피어서 예쁘고 아름답다. 사람도 함께해서 더욱 아름다운데 만고불변의 진리가 울해 만큼은 깨지고 말았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게 현실이 되었다. 고흐의 강렬한 그림처럼, 사이프러스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거리에서 나는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대낮의 고요한 도시를 건너간다. 지금은 안부 전화를 걸어도 부재중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밥 한번 먹자'는 소리를 할 수도 없다.
 
새가 날아가고 둥지만 남은 오후처럼 오늘이 비어갈 때, 나는 누구에게 전화를 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밥 잘 챙겨 먹어' 등, 밥에 관한 인사말을 습관처럼 한다. 밥은 배부르기 이전에 노동환경에 맞추어진 시간 개념이 들어있다. 밥 잘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하게 느끼는 날들이다. 모든 게 정지되는 듯, 거리두기 시간 속에서 유급과 무급의 노동이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이렇게 절실하게 울고 있다.

언젠가 노랑 유채 밭으로 도시락을 싸 들고 꽃놀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유채 밭 근처에 가면 비릿한 기름 냄새가 난다. 특유의 꽃냄새다. 성냥불을 그어 붙이면 확 불이 붙을 것 같은 날, 혼불처럼 당신의 말이 퍼지는 유채밭으로 갔다. 바람이 실금 불어와도 내 심장으로 수만 송이 불꽃이 일어난다. 끝도 없이 번지는 꽃밭의 향연, 구름이 밟은 자리, 바람에 물린 자리가 선명하다. 꽃잎 한 장 떨구는 것도 이 환장할 봄날에 나를 관통하는 너의 몸짓임을 알 수 있다.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타고 있는 봄 날, 그 유채밭의 추억과 함께 오늘을 갈아엎어 버렸다.
 
오늘도 우리 모두는 서로 사랑하고 밥알처럼 끈끈하게 붙어살고 싶은 마음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처럼 뜨거운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밥이 보약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공수표를 날리는 빈말이 되고 말았다. 애틋한 사랑의 말일 수도 있는 말이, 순수한 애정표현으로 던질 수도 있는 말이, 하지만 참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밥 잘 먹는 입에는 복이 든다고 한다. 끼니의 개념인 밥의 형태가 변하고 밥벌이의 목적이 변질되고부터 한 끼의 식사는 거룩해졌다. 가난하고 고달픈 삶일수록 한 끼의 밥은 더욱 거룩하고 신성하다. 추운 겨울 날 밥 한 그릇을 받아 들고 그릇을 감싸 쥐고 따뜻하게 받아 드는 공손한 손에서 진정한 밥의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풍성한 밥상이 아니더라도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오늘을 감사하며 먹는 밥이야말로 진정한 배고픔을 달래주는 밥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약속의 시간을 만들 수 없는 날이다. 조금의 거리두기가 더 절실한 시간임을 알아야 하겠다. 이 환난의 날들이 물러나고 나면 나는 너에게 밥 한번 먹자고 전화를 해야겠다. 이제는 공수표가 아닌 언제, 어디서, 몇 시에 밥 한번 먹자고 전화를 해야겠다. 세상의 찬밥이 아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으로 당신과 함께 먹고 싶다는 전화를 하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기약도 없는 이 시간, 이마저 희망을 던져 버리면 오늘은 너무 쓸쓸할 거 같아서 너에게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이 쓸쓸한 봄날에 밥 한번 같이 먹자고.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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