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신하들에게 '어둠 금지'를 명한다. 임금의 말도 안되는 지시에 신하들은 "백성들 스스로 어둠을 싫어한다고 믿게 만들면 저항 없이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답을 내놓는다.
 
신하들은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어둠은 무서운 것이라고, 어둠은 지루하다고 알린다. 처음에는 '뭐지?'하던 사람들도 점점 어둠이 나쁜 것처럼 느낀다. 임금은 백성의 뜻을 받아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것을 약속하고,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한다. 궁전 꼭대기에 거대한 인공 태양이 설치되고 사람들은 커튼을 치워버렸다.
 
24시간 환해진 세상에 사람들도 들떴다. 어둠이 없어지니 밤새 놀기 좋았다. 그렇게 신나는 날들도 잠시. 지겹도록 이어지는 낮에 사람들은 점점 피곤해졌다. 하지만 자려고 불을 끄면 어둠 단속반이 찾아와 벌금을 물렸다. 여론이 이상해지자 신하들은 백성의 관심을 돌리려고 세계 최대 규모의 불꽃축제를 계획한다.
 
<어둠을 금지한 임금님>은 권력과 여론 조작을 풍자한 그림책이다. 백성들은 조작된 여론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었고, 임금은 그걸 이용해 '권력의 뜻'대로 나라를 지배했다. 하지만, 그림책 속 백성은 여론 조작에 계속 속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권력자와 동조자들이 하늘이 너무 환해서 보이지도 않는 불꽃놀이를 펼칠 때 백성들은 집의 불을 껐다. 어둠 단속반이 뛰어왔지만 이웃 집으로, 이웃 거리로, 이웃 도시로 퍼져나가는 소등 시위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인공 태양까지 꺼버리자 세상에 어둠이 돌아왔다. 그리고 임금님은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어둠 속에서 불꽃이 더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부산일보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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