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분 시인

시낭송 강의를 하다 보니, 다른 영역 작가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시를 쓰는 데 있어 다양한 소재의 마련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눈으로만 보았지,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그림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프랑스 화가 모네의 작품들을 만나게 됐다. 모든 예술가들이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예술 활동에 정진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색채의 충격에 반응한 모네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는 순간까지도 빛에 반사된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기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모네는 빛의 화가, 물의 화가로 통한다. 사물의 고유색깔을 쓰지 않고, 신선하고 밝은 색채로만 그림을 그려 비난을 받기도 했던 모네.
 
특히, 그는 수십 년 동안 수련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탄생시켰는데, 이를 수련연작이라고 한다. 수상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수련 연작을 만들어낸 모네! 그는 수련을 그리기 위해서 지베르니 마을에 집을 빌려 정착했고, 그 집을 사들여 꽃밭으로 가꾸고 연못을 만들어 각종 수생 식물들을 직접 길렀다고 한다. 
 
회화의 시간성을 최초로 추구하여 빛의 시대를 연 모네는 인상주의의 성서라고 부르는'수련'연작만 250편 넘게 그렸다. 모네가 왜 수련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시력 손상으로 인해 어두운 색조로 둘러싸인 선명하고 강렬한 색만은 예전처럼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도 꾸준히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렇다. 그 힘은 바로 빛과 사랑이었다. 빛과 지독한 사랑에 빠져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마음의 눈으로 색채를 그려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모네의 작품 중에서도 수련을 특히 좋아한다. 혹독한 고난을 이겨내고 핀 꽃, 연약하면서도 아름다운 꽃, 그 속에서 희망이 보이고 자연을 내딛고 사는 삶. 그런 수련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일까? 혼탁하고 암울한 현실을 딛고 초연히 피어있는 꽃,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순수해지면서 맑아진다.
 
모네의 작품 속 수련을 보면 수련잎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물에 퍼져있어 신비스럽다.
 
그 신비스러운 수련을 나직이 속삭여본다. 
 
'번뇌의 파도가 일렁일 때/ 연못에서 수련꽃을 바라보자/ 아침에 꽃잎 열고/ 저녁에 닫는 수련의 모습을 보면/ 번뇌가 티끌처럼 사라진다/ 생명의 빛이 서려있고/ 수많은 잎새의 반짝임이 있는 곳/ 그 어떤 기나긴 아픔도/ 이곳에 오면 물로 녹는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혼탁한 세상의 한쪽에서/ 살아있음의 속박을 비늘처럼 털어내고/ 망가진 세월 부드러워지고 싶어/ 수면 아래 투영시킨다/ 물 같은 시간에 스미는/ 순수의 적막함으로 잡념이/ 소리 없이 일렁일 때/ 너를 보면 어느덧 빛으로 피어나고/ 고된 생각의 그림자가/ 조금씩 엷어지며/ 그 어떤 기나긴 아픔도 녹아든다/ 알 수 없는 침묵을 딛고/ 은은함으로 빛과 함께/ 깨어 있는 너를 본다/ 너를 보면 새 빛이 채워진다/ 너를 닮아간다.'
 
물의 작가 모네의 삶엔 언제나 물이 함께 있었다. 그의 그림은 물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시간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물 위의 세계와 물속의 세계를 보이는 대로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모네는 흐르는 물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생을 살았고 흐르는 물을 쫓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갔는가 보다. 
 
모네의 그림에 빠지다보면, 진흙을 밟고 세상을 달관한 수련인양 마음이 잔잔해진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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