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죽음·자연스러움 등 26개 주제
물리학자·타이포그래퍼 각각 글 모음
상식 뛰어넘는 양자역학·상대성이론
초현실주의·입체파 등 현대예술과 상통



<뉴턴의 아틀리에>는 과학과 예술의 창의적 관계 맺기를 시도한 글 모음이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이 26개 주제에 대해 각각 글을 썼다. 시 소통 결 자연스러움 죽음 보다(see) 언어 꿈 복잡함 등이 그 주제다. 1세기 전에 이미 양자역학이 나왔고, 21세기에는 인간 유전자의 저 깊은 비밀을 계속 탐색하고 있으며, 무한을 내장한 뇌의 지도(커넥톰)를 그리면서 기계의 지능이 사람을 능가하고, 기계와 유기체 생명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허물어지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과학은 무엇이며, 예술은 어떻게 변모해왔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인간 언어는 어떤 출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선 이 책의 놀라운 주장은 "우주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일반 언어로 우주(자연)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거다. 예컨대 물리학자는 '수학'으로 하나의 전자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로는 전자 하나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사실은 인간의 언어 너머에 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닐스 보어는 역설적으로 "양자역학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양자역학 등으로 물리학이 도약할 때 예술도 현대예술로 도약했다. 희한하게 둘의 도약은 겹쳤다고 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인간의 감각적 상식을 뛰어넘기 시작할 때 예술도 그랬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입체파, 칸딘스키의 추상미술, 달리와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몬드리안의 구성주의 등이 등장한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은 낮이면서 밤인 풍경이 그려진 작품이다. 꿈속 같은 초현실적 장면인데 알고 보면 이 세계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원자의 세계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원자가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중첩'이고, 전자가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 있다는 것은 '이중성'이다. 양자역학에서 핵심적인 이 사실들은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그러니까 마그리트의 그림과, 꿈과 몽상이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세상의 실재성을 포기한 지 오래다. 현대에 와서 '보다(see)'는 그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양자역학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보기 전에 대상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는 것이 대상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죽음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재앙이고 불행이며 생명이 끝나는 막막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주 자체가 막막한 것이다. 우주에서는 생명의 존재가 기적이고 매우 드물고 특수한 상태이다. 우주에서는 죽음이 생명보다 더 충만하며 죽음이 외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주는 엔트로피의 증가, 즉 죽음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생명은 뭔가. 우주의 이단아 정도가 될 것이다.
 
'자연'과 '진화'도 새롭게 봐야 한다. 생명을 만들어낸 자연과 진화는 경이롭고 심오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자연과 진화는 목적이 없으며 무작위로 진행된 것이다. 심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자연을 기계와 다른 무엇으로 여기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금 기계는 점차 복잡해지면서 유기적인 복잡성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외려 기계 기술이 오히려 자연에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러워지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를 '재료' 측면에서 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태양계, 지구 생명체의 99%는 탄소 질소 산소 수소로 이뤄져 있다. 원자 수준에서 보면 바위 흙 철 태양 인간 달걀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우주에서 같은 뿌리의 같은 식구이다. 인간 생명 과학 예술 철학,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 있으며, 그 단계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우주와 생명을 아무리 정치하게 설명하더라도 예술의 몫이라는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설명하지 못하는 저쪽 허공 속에서 아름다움이 흘러나올 수도 있고, 정치한 설명 자체가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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