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호 시인

그에게는 삼십칠 년째 쓰고 있는 도장이 있습니다. 인감이자 통장용 도장으로도 사랑받는 도장입니다. 주민 센터 직원은 이제 이 도장의 귀퉁이가 너무 많이 떨어져 나가서 인감으로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마치 땅이 꺼지는 듯 심한 상실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죽도시장에서 보기 좋은 놈으로 하나 골라 새로 새겼습니다. 자식을 잃고 새 양자 들인 듯 왜 이리 머릿속이 복잡하던지. 도장 하나가 이럴진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땠을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어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가난이란 구름이 좀처럼 떠나지 않던 시절, 그가 국민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그의 큰 형이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그도 그의 형을 따라갈 뻔 한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어머니의 삶은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아비 없이 키우던 아들이 그리 허망하게 떠날 줄 누가 알았을까. 형은 인물도 뛰어나서?동네에서 소문난 멋쟁이였습니다. 이발 기술을 배우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학교 준비물이 있을 때면 형에게 달려가 돈을 얻어 사곤 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던 그에게 형은 아버지와 다름없었습니다.
 
그 도장은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장애가 있던 친구는 동해에서 춘천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친구의 집도 형편이 고만고만하여 중학교를 마친 후 고교 진학을 못하고 있다가 오게 된 것입니다. 말이 유학이지 사실은 고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자취집이어서 항상 붙어 다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며 야학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직업교육을 받는다며 늦게 귀가했습니다. 궁금했지만 감추고 싶어 해 캐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봄볕이 좋던 날 그는 수줍게 웃으며 이 도장을 선물했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을 처음 새긴 거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내 이름을 새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친구가 내 한자 이름을 물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도장을 받으면서 친구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근데 위아래가 바뀌었습니다. 처음이다 보니 실수를 한 거라고 합니다. 도장을 새기기 위해서 고정을 시키는데 위, 아래를 바꿔 고정시킨 채 이름을 새겼던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주민 센터를 가든 은행을 가든 도장을 내밀 때는 항상 "도장 위아래가 바뀌었습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또 "제 도장은 마음씨가 착한 사람만 제대로 찍을 수 있다"라고 하면 모든 분들이 활짝 웃곤 했습니다.
 
어쩌다가 깜빡 그 말을 잊고 못했을 때는 난감하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물론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떨 때는 이 친구가 도장을 쓸 때마다 자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반대로 새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처음으로 직장을 잡아서 월급 통장을 만들 때 그 기쁨을 나와 함께 했고, 전세방을 계약할 때도 나의 대리인이 돼 계약서에 떡하니 멋있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읍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할 때도 나를 대신했던 듬직한 친구입니다.
 
춘천의 시장에서 도장집을 차려놓고 여전히 열심히 사는 이 친구.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밝게 웃으며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친구. 이 도장에는 친구의 우정과 사랑이 담겨있기에 보석보다 더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 도장만큼은 현역에서 은퇴시키지 않고 같이 지내볼 참입니다. 그것이 친구를 향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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