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산 정상에서 조만포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전망바위에 서면 멀리 봉화산이 보이고 서낙동강과 조만강의 합수지점이 어렴풋이 보인다.

버스 차창 너머 봄이 너울거린다. 낙동강 건너 김해 벌에도 봄 마중이 한창이다. 산뜻한 봄바람이 귀를 간질이며 '나~ 왔어요, 나 돌아왔어요.' 속삭이는 것 같다. 그 바람 속에 달콤 쌉싸래한 봄이 속살대는 것이다.
 
이번 산행은 조만강과 장유 수가마을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 금병산(錦屛山·242.5m) 능선을 오른다. 금병산은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듯 그 산세가 아름답고 수려하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장유면 수가마을을 들머리로 단감 과수원, 금병산 정상, 가동고개 갈림길, 129m봉, 헬기장을 거쳐 조만포로 하산하는 코스다. 특이할 점은 산행 내내 조만강과 숨바꼭질 하듯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며 길을 함께 한다는 점이다.

수가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면, 금병산에 둘러싸인 평온한 수가마을 입구가 나온다. 조만강의 아름다운 물줄기가 흐르는 마을, 수가(水佳)마을로 들어서면, 오래된 돌담과 대나무 밭이 반기고, 길가 묵정밭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청갓과 겨울초가 겨울 끝물을 나고 있다. 묵은 상추에도 어린잎이 반들반들 윤기를 내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을회관. 화단에는 '단기 四二八九년 七월 九일 창립'한 '수가마을 독서회' 빗돌이 서 있다. 뒷면에는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배고팠던 시절, 배움만이 가난을 이겨낸다는 신념으로 글 읽기를 했던 농촌 젊은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는 듯하다.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는데 마을 대부분의 밭에는 한창 어린 정구지 싹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아시 정구지(초벌 정구지)는 사위도 안 준다.'는데, 수가마을 밭은 온통 그 귀한 정구지로 지천이다. 그렇게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수가마을의 정경이 따사로운 오후다.

마을회관을 끼고 왼쪽 길로 오르다, 마지막 집 근처에서 단감 과수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시멘트길 따라 양쪽으로 단감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오르는 계곡 전체가 단감나무들이다.

▲ 수가마을 위쪽 단감과수원에서 내려다본 조만강과 칠산평야.

과수원을 휘적휘적 오른다. 아직 나무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넓게 뻗은 가지마다 작년의 감꼭지들이 붙어있어, 그 해 그들의 노고를 가늠케 해줄 뿐이다. 그러나 나무 밑 작은 바윗돌에는 바짝 초록물이 오른 이끼들이, 두 주먹 펴고 활짝 깨어나 사람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과수원 제일 높은 곳에서, 마을 쪽으로 바라보는 전망은 꽤나 시원하다. 우선 김해 칠산 벌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뒤로 칠산, 임호산, 경원산과 분성산, 신어산 능선이 차례대로 눈에 잡힌다. 수가마을 앞으로는 주촌면과 장유면의 젖줄 역할을 하는 조만강이 여유롭게 흐르고 있다.

봄은 남쪽 강을 거슬러 온다고 했던가? 녹산 앞바다의 봄이, 서낙동강 따라 서서히 조만강으로 오르며 수가마을에 잠시 머문다. 조만강의 완만한 흐름이 봄볕 속에서 더욱 나른하게 보인다.

과수원과 금병산 줄기가 끝닿는 지점 왼편. 희미하게 난 산길을 따라 길을 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과수원 왼쪽 산줄기의 급경사면으로 올라, 금병산 안부 쪽으로 바로 합류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밤송이와 솔방울, 참나무 낙엽들이 함께 밟히며 바스락거린다. 그 밑으로 파란 이끼류들이 조금씩 푸른색을 더하고 있다. 계곡 쪽에서 오르다보니, 수가마을 양쪽으로 에워 싼 두 산등성이가 조만강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묘비 없는 몇 개의 유택들이 길을 내어주기에 망정이지, 온산이 그야말로 나무들로 빽빽하게 가려져 곤란을 겪는다. 최근에 간벌을 했는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다. 그 나무들 사이로 길을 내려니 꽤나 힘이 부친다.

산길 곳곳에서 만나는 진달래나무. 가만 보니 꽃망울이 파랗게 맺혔다. 미안한 일이지만 망울 하나를 떼 속을 살짝 뒤져본다. 희미하게나마 분홍색 속살이 내비친다. 아! 이제 이 분홍빛 봄꽃 아가씨가, 활짝 웃는 얼굴로 봄나들이 나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다. 괜히 마음마저 기껍게 밝아온다.

이러구러 산줄기를 30여 분 타고 오르다보니 금병산 능선에 다다른다. 오른쪽은 옥녀봉, 왼쪽은 금병산으로 향하는 능선이다. 금병산 쪽으로 향한다. 잠시 경사 길을 오르니 곧이어 금병산(242.5m) 정상이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정상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뒹굴고 있다. 조그마한 공터의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간벌을 하면서 나무들도 모두 쳐낸 모양이다. 삼각점이 없으면 정상인 줄도 모르겠다.

▲ 금병산 정상엔 나무들어 모두 베어져 뒹굴고 정상 표지판만 덩그러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하기야 능선 길에서 만나는 작은 봉우리 같은 산이면서, 변변한 정상석도 없는 신세이고 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금병산 242.5m'란 정상 표지판을 달고 있던 나무마저 벌채되어 나뒹굴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올라온 길 쪽으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듯싶다.

쓸쓸한 마음으로 조만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제껏 금병산 줄기를 거칠게 타고 올라왔지만, 이제부터는 산책하듯 편안하게 여유로운 능선 길이다. 이를 아는지 "딱딱딱딱" 여기저기서 딱따구리들이 나무를 찧는다. 그 소리가 좋아 오래도록 따뜻한 바람 속에서 딱따구리 소리를 즐거이 듣는다.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걷는다. 왼편 나무숲 사이로 조만강이 따라오고, 김해평야의 그 넓은 벌판이 제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인다. 이들과 길동무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전망바위. 조만강과 서낙동강이 흐르고, 녹산의 봉화산 줄기도 여유롭게 뻗어있다. 멀리 다대포 자락이 어렴풋하다.

전망바위에서 길을 깊이 내린다. 그리고 다시 능선. 능선 뒤쪽으로 올라왔던 금병산 줄기가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니 오른편으로 '부산경남경마공원'이 조망되고, 경마장 트랙이 보인다. 2005년 개장한 경마공원은 부산시 강서구 범방동과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일대 약 38만평 위에 개발되었다. 경마 경기장을 비롯해서 국내 최대의 말 테마공원으로 유명하다.

잠시 오르막 이후 돌탑에 선다. 조그만 바위에 훌라후프 하나 걸려 있고, 두 바위 사이를 간벌한 나무둥치로 간이평상을 만들어 놓았다.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 간이평상에 앉아본다. 보기보다는 편하다. 나뭇가지에서 개개비 한 마리, 시끄럽게 재재거린다.

▲ 내리막 중간에 있는 간이 평상과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훌라후프.

길을 내려가다 보니 눈앞으로 129m봉이 버티고 섰다. 서낙동강 다리로는 강물이 흐르고, 남해고속도로 위로는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가동고개 못미처 고사리 밭이 보인다. 겨울을 난 고사리가 싱싱한 연둣빛을 띠며 포자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운지버섯의 몸 색깔도 더욱 선명하고 깨끗해졌다. 맑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것 같다.

가동고개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는 경마장, 왼쪽으로는 가동마을 갈림길이다. '조만포 1km' 이정표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사실 여기서부터 조만포까지의 길은 부산 땅이다. 그러나 한때 김해의 땅이었음을 떠올리며 길을 재촉하는 것이다.

129m봉 가는 길. 대나무 숲이 보인다. 바로 아래 마을이 대나무가 많다하여 '죽곡마을'인데, 그래서일까? 싱싱한 푸른빛의 대나무가 한창 봄물을 올리고 있다.

완만한 오름세를 유지하다보니 129m 봉우리.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 부산의 서부산권 개발로 교통량이 현저히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둔치도도 드넓게 펼쳐져 보인다. 둔치도는 서낙동강과 조만강 하류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하중도이다. 여러 개의 모래톱과 곳곳에 미로처럼 얽힌 수로, 그 주변으로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곧이어 헬기 착륙장. 헬기장 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시야가 환해서 좋다. 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몸은 기분 좋게 나른한데, 새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온다.

벤치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간다. 날머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 잘 조성된 유택이 보인다. 영월 엄씨 부부 유택이다. 그곳에서 보는 조만강과 조만포의 조망은 가히 절경이다. 조만강의 여유로운 물 흐름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포구마을의 목가적인 풍경도 넉넉해 보인다. 봉화산 줄기 밑으로 조만강과 서낙동강의 합수지점도 멀리 보인다.

곧이어 날머리인 조만포. 목제계단에 서니 조만교와 장유로 가는 국도가 보인다. 계단을 내린다. 조만교 위로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쳐 간다.


Tip. 조만강과 조만포
강 하류에 긴 주머니처럼 생긴 섬이라 '조마이포'

조만강(潮滿江)은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에서 발원하여 주촌, 장유를 끼고 흐르는 강이다. 주촌, 장유의 여러 개천과 합류하여 칠산평야, 남포평야 등에 물길을 내어주고, 조만포와 장락나루를 지나 서낙동강과 합류를 한다. 옛날에는 태야강(太也江)이라 불리기도 했다.
 

▲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에 나오는 '조마이포'의 배경 조만포.

그 조만강의 하류, 서낙동강이 합수하는 마을에는 조만포가 있다. 지금은 도로를 내며 산개되었지만, 예전에는 갈밭사이의 자그마한 강변마을이었다. 이 동네사람들은 이곳을 '조마이포'라고 부른다. '조마이'는 '주머니'라는 뜻의 경상도식 발음으로, '길쭉한 주머니처럼 생긴 섬' 부근의 '포구'라는 뜻이다.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에 나오는 '조마이섬'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요산 선생의 말로는 '조마이섬'은 실재하지 않는 섬이라 밝혔으나, 몇몇 문학인들은 조만포 건너편 모래톱 부근이 '조마이섬'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없이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 올리는 갈대청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한결 싱싱해 보였다." 조마이섬을 묘사한 요산의 글이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