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다양한 성찰과 의미 찾기
 정치학·철학·역사학 등 관련 글 19편
 자유·평등의 시민공동체 탄생 주목
 광주는 분노·절망·침묵 원죄의식 장소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5·18. 최근 정찬주의 장편 <광주아리랑>(전2권, 다연), 김삼웅의 5·18 광주 혈사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두레), 금남로 근처 호텔에 근무한 홍성표의 광주 목격담인 <호텔리어의 오월 노래>(빨간소금) 등이 출간돼 다시 광주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무한텍스트로서의 5·18>은 여전히 그 의미화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5·18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담은 책이다. 정치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문학 관련 1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정치학자 최정운은 "5·18 이후 우리의 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고 말한다. 5·18 광주에서 자유 평등 국가 민주주의 그 모든 이상이 하나로 얼크러진 시민들의 '절대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5·18의 독보적인 고유성과 새로움이라는 것이다. 항쟁 마지막 날, 시민수습위원회 위원장 이종기 변호사는 시민군과 함께 죽겠다며 다시 도청으로 들어갔다. 철학자 김상봉은 이를 두고 '항쟁공동체의 신비'라고 칭한다. 예정된 패배와 죽음을 뛰어넘어 거기에는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지극한 만남의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 5공의 전두환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 시절에 광주는 많은 이들에게 가책과 부끄러움의 장소였다. 시대의 비극을 목도한 많은 이들이 비겁하게, 같이 죽지 못했어도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분노와 비탄과 절망, 그리고 침묵으로 점철되었던 광주를 시대적 원죄의식의 장소라고 했다. 김현은 1980년대 르네 지라르의 폭력 이론을 공부했다. 5·18의 국가폭력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였다. 그것이 당시 절망을 넘어서려는 몸부림 같은 방법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빛나지만 그 과정은 나선형의 역사를 상기해야 할 만큼 얼룩져 있다. 최장집의 말마따나 1987년 6월 항쟁이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5공 정권은 또다시 감히 군사력을 동원할 수 없어 붕괴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광주 복원은 권력의 향방에 따라 진자 운동을 되풀이한다. 일례로 신군부와 야합한 대통령 김영삼은 처음에는 광주를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1995년 어쩔 수 없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던 것이다. 또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에 침몰되면서 '오월의 경험'은 유산·퇴색하는 지경에 이른다.
 
광주 이후 40년은 과연 무엇이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책의 여러 글들은 서서히 진행된 5·18의 형상화를 다루고 있다. 1988년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와 1997~98년 임철우의 장편 '봄날'(전 5권)은 5·18을 증언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2000년대 이후의 소설은 광주를 내면화하면서 달라진다. 2012년 권여선의 장편 '레가토'는 광주 이후 기성화된 386 세대의 속물성을 냉소하고 경계하면서 광주를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일을 강조하고 있다. 2014년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는 어떤 이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왜 도청을 떠나지 않았는지,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후의 삶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2002년 정찬의 장편 '광야'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킨 폭력에 인간 에너지가 저항한 광주의 본질을 파헤쳤다.
 
2013년 공선옥의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와 김경욱의 장편 '야구란 무엇인가'도 2000년대 이후의 오월 소설이다. 김경욱의 장편은 복수 서사를 담고 있다. 그 복수 서사는 '전두환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저 무시무시했던 독재자는 아직도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알츠하이머 골프'를 치고 있다. 1986년 김현은 영화 '밀양'의 텍스트였던 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를 분석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너는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