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씨는 지는 법이 없다.'
 
그림책의 첫 문장부터 범상치 않다. 도대체 영자 씨가 누구길래? 지지 않는 영자 씨의 일상을 따라가 보자.
 
숟가락 그득 밥을 떠서 김치를 손가락으로 척! 영자 씨는 김치만 있어도 누구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칼을 한번 휘두르면 일망타진! 상추밭을 엉망으로 만들던 달팽이들이 두 동강 난다. '뭣이 문제인디!' 영자 씨가 레이저 눈빛을 쏘아 보내면 옆 동네 김 이장의 불만·군소리 따위는 쏙 들어가 버린다.
 
이렇게 대단한 영자 씨가 쉽게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났다. 태풍보다 더한 상대의 이름은 바로 나이듦, 즉 늙어 간다는 것이다. 거미의 작은 움직임을 단번에 포착하던 눈은 침침해지고, 날아다니는 나방도 때려잡던 손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수박 여섯 통을 머리에 이고도 거뜬하던 힘도 점점 약해져 간다. 곳곳이 쑤시고 결려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천하무적 영자 씨〉는 누구나 겪게 되는 나이듦을 다루는 그림책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늙는 것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서러운데 세상은 '동안' '안티에이징' 운운하며 더 젊게 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나이듦으로 인한 변화를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린다.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림책을 만든 이화경 작가는 "영자 씨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이자 할머니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늙어 간다고 해도 뭐 어떤가? 피할 수 없으면 그게 무엇이든 즐기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자세다. 지는 법이 없는 우리의 영자 씨.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노화와 결투를 치르기로 했다.  

부산일보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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