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확산세 파고를 오르내리며 허우적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한국은 균형 잡기를 터득한 듯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연쇄 위기에 처한 경제 전망은 하나같이 암울하고, 생활방역체계 전환 직후 터진 수도권의 산발적 집단감염과 n차 전파 속출은 재확산 우려를 높였다. 그럼에도 통제 가능하다는 믿음이 과도한 불안을 여전히 누르는 분위기다. 앞선 의료체계와 기술에 기반한 투명한 소통과 자율적 협력으로 연일 외신의 극찬을 받은 'K방역'에 대한 자부심은, 방역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가 두려움에 멈춰 설 이유가 없으니 위대한 국민과 함께 나아가겠다는 문대통령의 취임3주년 연설이 대변하듯, 산적한 문제가 무엇이든 향후 잘 헤쳐 나가리라는 모종의 '자신감'을 탑재케 만든 것 같다. 
 
힘든 시기 이런 긍정적 집단암시도 때론 필요하겠지만, 하루가 멀다고 자괴감이 들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뇌리에서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늘 교묘하게 악용되나 근절되지 않는 색깔론과 지역주의. 본분인 민생법안처리는 뒷전이고 아시타비(我是他比)의 진영논리에 갇혀 싸움과 공전을 밥 먹듯 하는 동식물국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무시하거나 은폐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재생산하는 폐쇄적 조직문화. 목적의 순수성에 취해 간과되는 절차의 투명성. 태도 함양보다 경쟁적 지식 습득 수단으로 전락한 철학 부재 교육. 인간을 물화시키는 26만명의 괴물들이 우글거리던 'n번방'사건을 통해 표면화된, 직종·지위·나이 불문 사회 전반에 깊숙이 퍼져있는 왜곡된 성 인식과 낮은 인권감수성. 공감능력 부족으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온갖 폄훼와 망언.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현장, 극단의 혐오가 난무하는 가상의 공간. 걸핏하면 약자에게 군림하려는 갑질문화. 위험의 외주화 등 구조적 문제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지 못한 채 반복되는 안타까운 죽음들. 재난 속에 더 도드라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현상과 취약계층의 고립 및 생존조건의 불평등. 당장 이익에 눈멀어 외면하는 생태계 균형과 기후위기.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기심, 무분별함, 자제력 결여, 설마 하는 방심... 이렇듯 방역우수 성적표로만 상쇄시키기 어려운 또 다른 '우리의 자화상'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라기엔 무리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확한 위치 진단이 우선인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수준과 격은 어디쯤에 있을까?
 
무엇이 문제인 걸까? 겉으로 보기엔 어엿한 '성인'인데 속은 여물지 못한 '어린애'처럼, 이 어색한 '불균형과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독재에 맞선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역사, 게다가 '촛불광장'을 통해 권력자 위에 있는 '시민의 힘'을 막연히 경험하고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섬세함'은 부족하다고 할지... 민주주의란, 집단적 저항운동이나 선거권 행사와 동일시되는 몇 번의 커다란 사건을 넘어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지속적 훈련을 통해 세련되게 갈고 닦아야 하는 상생을 위한 일상적 기술이자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 제1조에 선언되어 있는 '국민주권주의'를 누구나 알면서도 그 주권을 법조문 밖 '실생활에서' 어떻게 구현하며 살아갈지 '민주시민'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 제도하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은 웃지 못할 이율배반적 상황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절차'는 틀에 불과하며 그 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의식과 자질이다. 즉 민주주의는 고정적 개념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성찰하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재정의되어야 하는 '역동적 개념'이며, '민주시민'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 의미를 잃는다. 그만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 막중하며, 원칙적으로 사회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 역시 시민들에게 있다. '나와 너의 변화' 없이 사회의 변화도 요원하기에, '민주시민교육'은 우리가 '주인답게' 깨어서 제대로 역할을 다하도록 촉진하는 유용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2018년 제정된 '김해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2019년 '종합계획'이 수립되었고, 올해는 '위원회' 구성과 함께 '활동가 양성과정'을 운영 중이다.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강화된 민주적 역량이 지역 풀뿌리민주주의 정착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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