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개발 전략으로 세계 빈곤 상존
부의 민주화 실천하는 자본주의 역설
빈곤국 번영 가져올 혁신 사례들 제시



1850년대 미국은 오늘날 앙골라, 몽골, 스리랑카보다 더 가난했다. 당시 유아사망률은 1000명 중 150명으로 2016년 기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3배나 높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강국이다. 한국은 1960년 1인당 GDP 155달러의 극빈국에서 2016년 2만 7500달러의 부유한 나라가 됐다.
 
문제는 이런 기적이 수십 년 전 똑같이 가난했던 나라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공식 개발 원조에 투입된 돈이 1960년 이후로 4조 3000억 달러가 넘는데도 말이다. 1960년대 가장 가난하던 나라들 다수는 여전히 가난하다. 특히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말라위, 잠비아, 베네수엘라 등 20개국은 1960년대보다도 더 가난해졌다.
 
글로벌 부익부 빈익빈은 심화하고 있다. 2016년 전 세계의 해외직접투자 1조 5000억 달러 중 1조 1000억 달러가 가장 부유한 나라들인 OECD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자본의 '위험 회피' 속성 때문이다.
 
<번영의 역설>은 세계에서 가장 절망적인 지역에서 경제와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 혁신의 힘을 설득력 있는 사례를 통해 입증하는 책이다. 저자는 '파괴적 혁신' 이론의 창시자로, 30년 가까이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낸 학자이자 4개 회사를 창업한 기업가. 그의 '파괴적 혁신' 이론은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피터 드러커의 '경영 혁신'을 잇는 대표적인 혁신 사상이다. 저자는 올 1월 67세 나이로 타계했다.
 
저자는 실패한 개발 정책 패러다임에 대한 창조적 파괴를 제시하며 '실천하는 자본주의'를 역설한다. 절대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일, 부의 민주화, 그러니까 공공선(公共善)은 그가 이 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이다.
 
저자는 세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바로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한다. 책의 공저자인 에포사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고국 나이지리아에 우물을 설치하는 일에 나섰다. 어렵사리 자금을 모아 5개의 우물을 설치했지만, 몇 달 뒤 우물들이 고장 나 방치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일을 포기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는 이렇게 버려진 우물이 5만 개가 넘는다. 저자는 우물 설치 등 세계 각지의 무수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 빈곤 해결에 실패를 거듭해 온 것은 '밀어붙이기식 개발 전략' 때문이라고 밝힌다. 지금까지 저소득 국가들의 열악한 인프라 개선부터 각종 제도 정비, 해외 원조 증대, 대외 무역 활성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우물 설치처럼 실패하고 말았다고 본다.
 
저자는 가난한 나라들이 번영을 누릴 길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고 강조한다. 빈곤국의 가난만 보지 말고 기회와 잠재력을 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전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약 6억 명의 사람들을 거대한 가난의 표시가 아닌 개발과 발전을 기다리는 기회, 거대한 시장 창조의 기회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상상력과 통찰력을 갖고 시장 창조 혁신을 이뤄낸 사례가 인상적이다. 1990년대 말 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브리티시텔레콤 기술이사 출신인 모 이브라힘이 그렇다. 부자들만 사용하는 휴대전화 사업이 아프리카에선 절대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사람들은 예측했다. 하지만 이브라힘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 꼬박 7일을 걸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얘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할 것인가에 초점을 뒀다. 그가 1998년 창업한 셀텔은 6년 만에 530만 명의 고객, 매출 6억 1400만 달러와 일자리 450만 개에 이르는 거대한 통신 산업을 창출했다. 저자는 "혁신가들은 다른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온갖 기회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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