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티치아노
현대의 호안 미로·조지아 오키프까지
명화 속에 숨겨진 천문학 요소 설명
미술학자·천문학자 부부 협업해 완성



서양 문명에서 금성을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라고 부른다.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인 금성은 밤하늘에서 달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천체다. 가장 밝을 때의 금성은 그 밝기 등급이 -4.9등급으로 항성 중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보다 25배 이상 밝고, 밝은 노란색으로 화려해서 미의 여신의 이름을 갖게 됐다.
 
비너스는 오래전부터 예술의 대상이 됐다. 가장 오래된 비너스의 원형은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처 구석기 지층에서 발견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BC 2만 2000년)이다. 비너스는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비너스는 더욱더 세속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됐는데 대표작이 '밀로의 비너스'와 '메디치 비너스' 같은 걸작이었다. 하지만 비너스는 중세의 회화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고대여신의 관능성이 죄의 근원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중세에 자취를 감췄던 현세적이고 관능적인 비너스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은 14~15세기에 이르러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최초의 누드화다. 비너스의 재등장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적 사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림 속 천문학>은 르네상스 시기의 라파엘로와 티치아노부터 현대의 호안 미로와 조지아 오키프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화가들이 사랑한 별과 우주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술을 전공한 김선지 작가와 천문학자 김현구 박사 부부의 협업으로 완성된 책이다. 1부에서는 태양계 행성들과 관련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을 묘사한 작품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명화 속에 나타난 천문학적 요소와 밤하늘의 별과 우주를 사랑한 화가들의 삶과 작품이 등장한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주와 밤하늘을 동경해왔고,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17세기 독일 화가 아담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천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미술사 최초의 밤 풍경화인 이 작품은 별자리와 은하수,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까지 그려져 있다. 이전의 화가들에게 달은 그저 수정같이 맑은 것이었으나, 그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가로 41cm, 세로 31cm의 이 작은 그림에는 무려 1200개의 별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609년 하지 무렵이다. 이는 갈릴레오가 1610년 <별들의 전령사>를 출간해 은하수가 수많은 별의 집합으로 이뤄졌고 달이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보다 9개월이나 앞선 시점이다. 엘스하이머가 갈릴레오보다 먼저 천체를 관측한 화가라니 놀랍다.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 조토는 혜성을 포착한 중세미술의 혁신가라 할만하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에는 성모 마리아의 일생, 수태고지,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최후의 심판 등을 연작으로 그린 조토의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 중 하나인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예수가 탄생했을 때 밤하늘에 떴다는 관념적인 베들레헴의 별 대신에 머리 부분과 꼬리가 분명한 핼리혜성이 그려져 있다. 조토는 이미 1300년경에 갈릴레오가 보는 방식으로 별을 보았다. 14세기 화가가 공포나 두려움의 감정 없이 혜성을 자신의 그림 속에 자연현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소용돌이치는 별이 등장한다. 우주의 적잖은 천체사진들에서 이 작품의 소용돌이치는 형태와 유사한 형상이 발견된다. NASA(미항공우주국)는 고흐의 이 작품과 비슷하다며, 겨울철 밤하늘에 보이는 외뿔소자리의 V838의 천체사진과 해류의 움직임을 만든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은 고흐가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고 작품 속에 직관적으로 표현했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는 화가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신격화 또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고흐 작품 속의 소용돌이치는 형태는 단순히 그의 격렬한 내적 갈등과 고뇌가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를 접하다 보면 작은 캔버스에 담긴 광활한 우주를 상상하게 된다. '우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란 생각이 든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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