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대학교 모국체험 프로그램에 참가중인 입양인들이 서예활동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최근들어 해외 입양인의 국제경쟁력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 지고 있다.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는 지난 10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재외 동포 포럼을 통해 "한국의 재외 동포는 한국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의 예"라며 해외 입양인들의 국제 경쟁력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김해 인제대 국제인력연구 프로그램 관련 해외 입양인들이 새삼 주목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국인 스티븐(29·콜라라도). 그는 요즘 한국 현대건축양식에 푹 빠져있다. 콜로라도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제대 건축학과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영어로 강의를 듣고 있다. 사실 한국말 뿐 만아니라 기후에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마냥 낯설기만 하다. 김치가 너무 맵다는 그는 뼛속까지 '미국인'이지만,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의 이십대 청년이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황색 피부. 그는 태어난 지 4개월 되었을 때, 미국 미시건으로 보내진 해외 입양인이다. 미국식 이름(Steven)과 양부모의 성(Chaffer)사이에 '박'이라는 한국 성을 덧붙인 그는 해운대 바다 앞에서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한다. 스티븐은 단순히 유학을 온 것일까? 그는 인제대 국제인력지원연구소의 '모국체험프로그램(IIHR)'을 통해 한국을 찾은 경우다.

인제대는 '모국체험프로그램'을 통해 한국판 '디아스포라'를 꿈꾸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종교전쟁으로 나라를 잃고도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현상을 뜻하지만, 최근엔 유대인의 성공배경인 민족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국제인력연구소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국제인력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인제대 김창룡 교수(신문방송학과) 역시 연구소 설립 계기로 이스라엘 유학 시절 유대인들의 철저한 해외 유대인 관리에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꼽는다. "이스라엘 정부와 시민단체는 1천 500만 명에 달하는 해외 유대인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교육합니다. 아주 놀라웠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구 수 600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원천일 것입니다." 그동안 해외 입양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006년에 처음으로 '재외동포 및 입양인 모국방문 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인제대의 국제인력연구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 토마스씨의 양보모인 패티스팅글 부부가 지난 2008년 인제대를 방문했다.
개원 이래 총 179명의 입양인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들은 16주 동안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배우고 태권도를 익히고 윷놀이 등의 문화를 체험한다. 건축학도 스티븐은 13기 입학생이다. 그의 모교인 콜로라도는 록키산맥이 보이는 곳이다. 그에게 김해 분성산은 정답고 흥미로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는 프로그램을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원에서 한국의 낮은 산을 닮은 건축물을 설계 해 볼 생각이다.

스티븐의 입학동기 루이스(25·여)는 덴마크에서 왔다. 이유정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그녀는 덴마크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돌아가선 한국의 교육환경과 덴마크의 교육환경을 비교하는 논문을 쓸 예정이다.

네덜란드에서 온 레이첼의 전공은 미디어이다. 그녀는 국제입양아동 모임인 '미니게더링'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을 버린 나라로만 한국을 기억하는 입양인들에게 한국을 방문해 보도록 설득할 예정이다.

'모국체험프로그램'의 영향은 입양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국인 부모들이 '모국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한 자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국에 남아 영어강사가 되고 싶어 하는 토마스의 양부모는 지난 2008년 인제대를 방문해서 한국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위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한국문화 전도사'라 부른다.

"한 번도 한국을 '내 나라'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한국을 생각하면 너무 싫었어요. 제 외모를 물어오는 사람에게 전 언제나 덴마크인 혹은 일본인이라고 말했습니다." 12기 졸업생 제니 위그너는 '모국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만 해도 '한국인'이란 인식이나 정체성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위그너는 요즘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소개하고 있다. "몇 개월 동안 한국문화를 체험하면서 저는 놀랐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자랑스럽게 제 자신을 한국계 덴마크인이라고 밝힙니다."

'모국체험프로그램'을 이수한 입양인들은 한국을 떠난 뒤에도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국적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 그들을 묶어 주는 것은 오로지 모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느낀 '같은 한국인'이란 인식이라고 한다.
 
김 소장은 "해외 입양인에게 고국의 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국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며 해외 입양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10대 소녀들로 구성된 댄스그룹 '원더걸스'가 미국의 음악관련 차트 끄트머리에 이름만 올려도 '국가 경쟁력' 운운하며 환호하는 오늘날,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이처럼 김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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