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철마을의 동쪽 편으로 무척산이 짙은 구름에 가려 있다. 무척산 곳곳에는 가락국 시대의 전설과 생철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깎아지른 듯한 무척산 품에 안겨 200여 가구 500여 주민 오순도순
선조들 글·무예 가르쳤던 훈도골 철 캐기 위해 굴 팠던 목탄골
허왕후 극락왕생 위한 모은암 등 마을 역사 간직한 흔적 곳곳에

옛 가락국 시대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철이다. 가야시대때 최전방에 속했던 곳으로서, 생림면 생철리의 본마을인 생철(生鐵)마을은 쇠가 많이 났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쌀농사를 주로 지으며 200여 세대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는 생림우체국과 생림중학교, 낙동강학생수련원이 위치해 있는데, 생림면에서는 가장 넓은 마을이기도 하다.
 
생철마을 가까운 곳에 무척산(无只山)이 있다. 무척산은 그 이름의 유래가 다양하다. 한자 그대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둘도 없는 산이란 뜻이 있고, '무척'이라는 도인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이 산에 도착해 도를 닦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척산의 골짜기는 깎아지른 듯 경사가 심해 비가 오면 마을로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그렇게 많았던 물이 싹 다 말라버린다고 한다.
 
무척산을 오르다 보면 생철마을 주민들이 훈도골, 목탄골이라 부르는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철을 캐기 위해 굴을 판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지금의 어르신들은 어렸을 적에 그 굴로 오가던 윗대 어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본사람들이 철을 캐기 위해 손을 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굴이 만들어진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훈도골은 이곳에서 글과 무예를 가르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주민들은 부르기 쉽게 훈두골이라 부르고 있다.
 
또 다른 골짜기인 목탄골에는 유명한 약수터가 있다. 마을회관의 한 어르신은 "칠월 백중에 이곳에서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안 아프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열댓 명씩 짝을 지어 오곤 했다. 지금도 아침마다 냉수마찰 하고 그러는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 무척산 중턱에 자리한 모은암.
생철마을 동쪽 무척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모은암은 가락국 시대때 거등왕이 모후인 허왕후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곳이다. 잘 만들어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깎아놓은 듯한 커다란 바위들이 절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게 보인다. 무척산의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 속에 저절로 자리한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규모는 작지만 기운만큼은 큰 사찰 못지 않다.
 
모은암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천지못이 나온다. 생철마을 김준용(55) 이장은 "60년대 말 어려웠던 시절에 생철마을 주민들은 시멘트를 지고 하루에 두 번씩 무척산에 올라 천지못 둑 짓는 일을 했다. 그 대가로 밀가루를 받아 수제비와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6월 말쯤이면 외부에 마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철권역 종합개발사업이 마무리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생철권역 종합개발사업은 김해시와 한국농어촌공사가 함께 추진하는 것인데, 무척산 관광자원과 이 일대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 브랜드, 팜스테이 등을 결합해 농촌 소득원을 발굴하고, 나아가 도농복합도시 김해를 알리기 위한 사업이다.
 
▲ 무척산에서 내려다 본 생철마을의 전경.
생철마을은 이 때가 되면 먹을거리 장터를 운영하고, 외부인들에게 생철마을의 농산물과 질 좋은 한우를 제공할 생각이다.
 
김준용 이장은 "우리로서는 생철권역 개발사업의 경우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이기도 하지만, 마을의 모습과 역사를 찾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도 돼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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