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문가·언론인 15차례 대담 내용
한미·남북 관계·북핵·냉전 체제 회고
2018년 이후 북·미 회담 경과도 분석
통일 위한 '큰 그림' 그리기 전략 강조



<판문점의 협상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을 지낸 대북 전문가 정세현(75)의 회고록이다. '프레시안' 편집인 박인규가 15개월간 15차례 대담한 것이다. 시골 청년 출신으로 비주류의 삶의 살았던 시절, 대북 협상가로서의 삶, 보수에 맞선 대북 전략가의 면모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전반이 나오는데 역시 흥미진진한 '북한과 마주한 40년 세월'이 대담 주 내용이다.

관심 가는 부분은 현재 한반도 정세를 읽는 그의 눈이다. 6·25 한국전쟁 70돌, 북한은 엊그제 4·27 판문점 선언(2018)의 결실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정세현이 보기에, 북한 전문가로 공적 삶을 시작한 1975년 이후 남북관계는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그것은 한·미동맹, 미국의 간섭과 견제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을 그렇게 만든 측면도 강하다. 용미(用美)가 아니라 종미(從美)와 숭미(崇美)로 지나친 대미의존에 사로잡혀 있는 게 우리다.
 
한반도에 유일하게 구시대 유물인 냉전 체제가 남아 있는 건 세계사적 수치이고 오명이다. 1990년대 초 한반도는 냉전을 걷어낼 기회가 있었다. 남한은 소련(90년) 중국(92년)과 수교했고, 북한도 1992년 살아남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며 미국에 수교를 제의했다. 그런데 아버지 부시 정부가 웃기는 소리라며 이를 걷어찼다. 정세현이 보기에, 미국이 수교를 거절한 이유는 위험국가 북한이 사라지면 미국 군산복합체의 무기시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1992년 미국의 수교 퇴짜 이후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것이 북핵 문제의 기로였으며 본질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2018년 남북과 북·미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것은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턱밑을 겨냥한 가운데 돌출된 '트럼프의 무개념' 덕이다. 그러나 미국 관료들은 곧 남북관계 견제와 관리에 돌입했다. 2018년 9월 평양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당시 군사분야 합의서를 놓고는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외교부 장관 강경화에게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그 이후 남북과 북·미간에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 '노딜'이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그다음은 계속 악화 일로다.
 
정세현의 견해에 따르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첫째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자꾸 말해야 한다. 북·미 수교는 한·미·일 삼각동맹에 힘을 보태 미국이 중국, 심지어 러시아까지 견제하면서 세계경제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효용성이 크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는 거다.
 
둘째 통일을 너무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독일의 예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를 '통일은 꿈도 안 꾼다, 내독(內獨) 관계만 개선하면 된다'는 식으로 눙치면서 일을 도모할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도 거창한 '통일부' 대신 '남북관계개선부'로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면서 남북연합을 서서히 도모해야 한다. 유럽연합도 독·불 국경 분쟁을 없앨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시작해 44년이나 걸려 성사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 때 개성공단 폐쇄는 최악의 자충수였다. 개성에서 시작해 해주공단, 남포공단, 신의주공단으로 점점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제 길을 스스로 막아버린 것이다. 이를 겨냥한 중국 일본의 노림수에 틈입할 전략을 짜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힘이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신주단지도, 원칙의 굴레도 아니다. 중국을 견제하는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외려 더 강한 한·미동맹을 필요로 한다. 사사건건 미국에 허락 받듯 물어보는 태도를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 주인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다. 정세현의 지론은 다음과 같다. '통일의 구심력이 통일에 대한 원심력을 압도할 때 통일은 이뤄진다.' 국민이 깨어나 나서야 한다는 거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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