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의 기치 아래 출범하며 공언한 대로, 김경수 도정은 지난 2년간 '소통과 참여'를 운영기조 삼아 '경제·행정·사회혁신'의 토대를 닦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불통과 독선으로 원성을 산 전임 도정과 비교되는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아마 '민관 협치 기반 구축' 노력일 것이다. 도민참여센터 경남1번가를 필두로, 다양한 시도로 그 가교 역할을 해온 도지사 직속의 사회혁신추진단, 최근의 공익활동지원센터와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개소까지 모두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에 역부족인 행정의 '협력자'로서 민의 '주도적 역할'을 이끌어내려는 걸 알지만, 뭔가 해소되지 않는 찝찝함과 미심쩍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과연 시민사회는 기대만큼 '협치의 파트너로서 자기 효능감'을 가질 수 있을까? 시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확산되어야 할 '근본적인 변화'는 없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늘어난 사업 창구 덕에 겉만 요란한 착시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닌가? 왜 아직도 곳곳에서 '참여의 온전성'보다 동원의 어정쩡함이 느껴질 때가 더 많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협치를 위한 권한, 즉 자치'의 기반이 워낙 약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시민단체 활동가로 첫발을 내딛고 알아가며 놀란 건, '시민사회의 열악한 재정구조, 또 이와 무관하지 않은 역량 부족'이었다. 비정부·비영리의 제3영역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 그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을 마치 수도자의 계율처럼 고수해왔지만, 이것이 되레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질 높은 시민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 족쇄가 되었던 건 아닐까? 게다가 많은 경우, 운영을 위해 후원금이나 기부금에 목매는 일이 정부지원금보다 순수한 재정원인지도 자문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이 '순수주의 틀' 자체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대안제시 등의 기능을 맡고 있는 '시민사회 활동'을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나? 그 '위상'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틀'이 만들어질 수 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각각 그 맡은 바 본분과 기능이 있듯, 시민사회 역시 고유의 본분과 역할이 있다. 더구나 일을 위임한 일꾼들을 총괄 관리 감독해야 할 엄중한 '주인 노릇' 아니던가! 당당해야 할 주인이 모양빠지게 매번 제 돈을 일꾼에게 타 쓸 수는 없는 법, 이를 위한 활동비와 품위유지비의 우선 책정은 이치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주인이 일꾼 눈치 보느라 제 몫도 못 챙기고 자발적 가난을 택한 격이다. 
 
한편 '문제 제기' 및 구호에만 머물지 않고 '문제 해결'을 통한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영향력 발휘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시민사회의 비효율적 조직망과 비전문성'도 고질병이다. 그 어느 분야보다 특정 관심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넓고 열린 사고, 체계적이고 긴밀한 '협력', 열정을 넘어서는 '능력'이 요청되는 일인데도 말이다. 
 
결국 행정이 시민사회와의 '진정한 협치'를 원한다면, 마지못해 끌려가기보다 자발적 참여 동기를 키우도록 '자치 토양'부터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인식'과 '구조'의 문제로, 역할 정체성에 적합한 역량강화 및 활동기반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민원인'을 막 벗어난 '협조자' 지위로는 유사 역할에 그치게 되며, '주인 의식 및 역할'을 되돌려줄 때야 비로소 온전한 참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주인이 동력을 지니기는 만무하며, '걸맞은 대접'이 뒤따라야 당당한 주인 노릇도 신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으로부터의 진짜 혁신을 원한다면, 더디더라도 이렇게 가는 게 지름길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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