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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하다오늘의 수필
  • 수정 2020.06.30 14:16
  • 게재 2020.06.30 14:15
  • 호수 478
  • 11면
  • 허모영 김해문인협회 회원(report@gimhaenews.co.kr)
▲ 허모영 김해문인협회 회원

장마철이다. 비를 머금은 경운산 자락이 백자 빛 안개로 자욱하다. 한동안 산허리를 감싸 안고 흐느적이던 안개는 골짜기를 가르는 아침햇살에게 서서히 자리를 비껴준다. 길게 여운을 남기며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안개 속에 초록의 나무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오랜 기억의 한 조각이 몽롱하게 피어오른다. 
 
아버지는 마흔한 살에 드디어 아들을 보았다. 줄줄이 딸 다섯을 낳고 기어이 만나고야 만 아들이다. 욕심내어 두 아들을 원했지만 또 여섯 째 딸을 낳은 뒤 더 이상 자식 욕심을 버렸다. 다섯째 딸인 나를 천덕꾸러기로 만들지 않게 해 준 고마운 남동생이다. 두 살 터울인 우리 남매는 가족들 앞에서 씨름도 하고 레슬링도 하며 어린 시절을 친구처럼 지냈다. 덕분에 나는 동생 덕을 톡톡히 보며 부족함을 모르고 유년을 보낼 수 있었다. 
 
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정성은 이름에서 드러난다. 남동생의 아명은 '고리'이다. 혹시 아들이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천한 이름을 지어 불렀다. 문고리, 쇠고리, 걸고리 등 일상에서 접하는 흔한 물건이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살라는 염원을 천한 이름에 담아서 아들에게 화가 미치지 않길 바랐다. 고리라는 이름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모두에게 쓰지 않도록 명했다. 아들의 천한 이름으로 놀림감이 될까 우려한 것이리라. 
 
가족 중 유독 나는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 늘상 고리라고 불러서 아버지께 야단을 듣기 일쑤였다. 나 때문에 5촌 당숙모인 신기 아지매까지 고리라 부른다고 더 속상해하던 모습이 선하다. 습관을 고친다고 억지로 앉혀 놓고 본명을 부르도록 시키곤 했는데 너무 어색하여 이후론 아버지 계실 때 아예 동생을 부르지 않았다. 고집불통인 나는 지금까지도 동생을 고리라고 부르고 있고 동생도 싫어하는 기색을 하지 않는다. 처음 아명을 지은 의도대로 내 동생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살도록 아마 주욱 고리라 부를 것 같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바라기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들을 편애하지 않았다. 느지막이 얻은 귀한 아들이나 표 내지 않았고 오히려 농사철이면 지게 직 들일을 돕게 궂은일을 시켰다. 엄격하게 예의범절을 가르쳤으며 형제간의 위계를 잘 지키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남동생은 지금까지 누나들과 동생에게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도 대문을 나설 때는 옷을 반듯하게 차려입었고, 큰소리 내지 않는 그야말로 선비같이 점잖은 동생이다. 
 
아버지는 거나하게 술이 취하면 딸들에게 다리를 밟아 달라고 했다. 농사일로 묵직한 다리가 알코올이 들어가니 더 무거워졌는지 잠들기 전까지 다리를 밟아야 했다. 양쪽 허벅지에 올라서서 용케 균형을 잡으며 언니랑 돌아가며 다리를 밟았는데 한 번도 아들에겐 시키지 않았다. 사랑스런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를 밟아주면 더 시원하게 느껴졌을 텐데도 아들과 딸을 대하는 애정방법이 달랐던 듯하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은 드러내지 않는 배려였다. 동생은 대학생이 되면서 담배를 배웠다. 혼자 몰래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데 애써 숨기려고 해도 몸에 배인 담배 연기가 벌써 아버지의 폐부 속까지 전달되어 있었다. 그 당시 제일 비싼 담배가 500원짜리 '솔'이었다. 아버지는 비싸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피우지 않는 담배다. 어디 외출할 때나 주머니에 솔을 넣어 체면을 세우고 평상시에는 200원짜리 '청자' 담배를 피웠다. 솔에 비해 청자는 니코틴이 강한 담배였는지 연기가 더 독하게 느껴졌다. 남자라면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알아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가게에서 담배를 살 땐 청자 한 보루와 솔 한 보루를 각각 사왔다. 그리곤 꼭 나에게 솔 한 보루는 남동생 방에 살짝 갖다 놓으라고 했다. 
 
우리의 관습에 부자간에 마주앉아 술은 마시지만 맞담배를 피우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금한다. 아버지가 직접 담배를 사다 주는 것은 더욱 금기로 여겨 누나인 나에게 시킨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아들이 이왕 끽연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건강을 조금이나마 덜 해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배려였다. 아들도 아버지도 그 담배에 대하여는 묵언하였다. 동생도 차마 아버지께 감사하단 말을 하기 민망하고 아버지도 아들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심전심이었다. 
 
아들이 군에 간 사이 아버지는 폐암을 앓았다. 6개월을 선고 받고 암 투병을 하실 때 그 좋아하던 담배와 술을 다 끊었다. "아버지, 다 나으시면 술과 담배를 다시 드시고 싶으신지요?"라고 내가 물었을 때, "담배는 이제 생각이 없고 술은 한잔 마시고 싶다"고 대답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제대하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 
 
지금도 산소에 가면 동생은 꼭꼭 상석에 담배 한 대를 피워 올린다. 아들은 말없이 솔 담배를 사다주던 아버지의 깊은 속내를 잊지 않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를 위해 최고의 담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양담배를 올린다. 담배 연기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를 나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 주던 아버지의 사랑이 무심히 피어오른다. 은근히 깊게 스며드는 담배 연기처럼 아버지의 향훈이 자식들에게 배어든다. 가슴 밑바닥에서 안개보다 진하게 피워 올리던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뭉클 솟는다. 비가 그친 경운산 자락이 다시 자욱해진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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