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은 프로이센 실패서 나온 것"
 '문제적 국가'의 역사 본격적으로 다뤄



<강철왕국 프로이센>은 프로이센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역사책이다. 1600년에서 1947년까지 350년가량을 세세히 다루고 있다. 1050여 쪽의 방대한 책이다.
 
프로이센 역사는 문제적이다. 자본주의 발전에서 '의회주의' 영국과 '시민혁명' 프랑스와 달리 국가 중심으로 '독일의 특수한 길'을 열었던 것이 프로이센이다. 통칭 후발 자본주의 독일의 역사적 실체가 프로이센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발전의 전범은 영국과 프랑스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일 일본처럼 제2의 길도 있으나, 특히 식민지 경험을 치른 나라들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경우처럼 제3의 길도 있으며, 심지어 중국처럼 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뒤 국가 중심으로 추진하는 변형 자본주의 길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범역사적 시각에서 프로이센의 길을 곰곰이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거다.
 
프로이센의 결정적 문제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죄과다. 특히 12년간의 나치 독재, 히틀러의 죄과는 반(反)인류적이었다. 히틀러가 설치던 1943년 처칠은 "프로이센은 유럽을 괴롭힌 악성 역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프로이센은 권력 숭배, 군국주의, 권위주의의 응집체로서 결국 독재의 잔인무도한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몹쓸 나라 나치 독일의 원류가 프로이센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프로이센은 청렴한 시민 행정, 종교 소수파에 대한 관용, 훌륭한 근대 법전, 대단히 효율적인 관료제, 유럽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로 엄청난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는 거다. 프로이센의 계몽주의도 역동적이었으며, 심지어 1944년 히틀러 암살 음모에 프로이센 장교들의 큰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는 거다.
 
프로이센을 빛과 그림자로 아울러 동시에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시각이다.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나쁜 놈은 없으며 무조건 암적 존재라는 것은 더더욱 없는 법이다. 저자는 "나치 독일은 프로이센의 완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프로이센의 실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참으로 미미했다. 베를린 일대의 브란덴부르크에 자리 잡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17세기 폴란드 왕을 설득해 넘겨받은 땅이 몇백km 떨어진 프로이센이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 점점 이런저런 영토가 징검다리처럼 생기면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으로 부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서 프로이센은 점차 성장한다.
 
물론 프로이센에서는 똑똑하고 야심 찬 군주들이 나타났고, 또한 철의 추진력을 지닌 위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유럽 전체를 놓고 볼 때 프로이센의 성장은 유럽을 어지럽게 휩쓴 종교전쟁, 30년 전쟁, 7년 전쟁,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독일을 분열시켰던 것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프랑스 부르봉 왕가 등 유럽 패권국이었고, 프로이센을 성장시켰던 것도 그들이었다. 프로이센이 1871년 독일 제국으로 탄생한 것은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와 그 군주 빌헬름 1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패권국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서로 견제할 때 프로이센은 그 와중에 힘을 쓰지 못하기도 했으나, 반대로 힘을 얻어 세력을 키우기도 했다. 대단히 복잡한 유럽의 패권 다툼과 견제가 프로이센을 제국으로 키웠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1947년 베를린의 연합군 점령 당국은 독일 군국주의와 반동주의의 온상이라는 딱지를 붙여 프로이센을 없애 버렸다. 저자는 그토록 위풍당당했던 국가가 어떻게 그렇게 급작스럽고 감쪽같이 사라졌는지를 묻고 있다. 프로이센 역사의 특이점은 절체절명의 순간과 너무 빨리 힘이 강해진 시기가 번갈아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럽의 권력으로서 프로이센의 가장 큰 특징이다. 프로이센은 유럽 역병의 근원이라기보다는 유럽 패권 다툼이 빚어낸 대단히 전형적인 유럽 현상이었다. 유럽의 깊숙한 내면이었던 거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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