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이롭고 정교한 발명품인 연필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미국 듀크대 토목공학과 석좌교수인 저자는 600여 쪽에 걸쳐 연필의 역사를 방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연필의 탄생부터 어원학적 기원, 기술적 발전 과정, 연필을 둘러싼 산업적 배경 등을 넓게 아우르면서도 깊이 파고들었다.
 
나무 연필의 근세 역사는 적어도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내과 의사인 콘라트 게스너는 1565년 발간한 <돌과 암석에 새겨진 화석의 모양과 형태에 관한 연구>란 책에서 현대 연필의 시조에 대한 서술을 언급했다. 게스너는 책의 삽화에 새로운 종류의 첨필이나 필기도구와 그 심의 재료로 쓰이는 광물을 함께 그려놓았다. 그 광물은 흑연 덩어리였다. 
 
미국 최초로 흑연심 연필을 발명한 이는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한 소녀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상황이 명확하지 않다. 가구장인에서 연필 생산자가 된 윌리엄 먼로가 1812년 처음 만든 연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의 연필 전쟁도 흥미롭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에서는 독일 연필회사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국 연필업계는 더욱더 호황을 누렸지만, 독일은 연필 원료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제조 비용도 늘어나 연필값이 크게 올랐다.
 
요즘은 연필 1자루쯤은 잃어버려도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연필이 한때는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치솟고, 밀수가 성행한 적이 있으며, 악덕 상인들이 심도 넣지 않은 연필을 진짜 연필처럼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는 생소하게 다가온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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